열린우리당이 당론으로 확정한 형법개정안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간첩수사에 큰 구멍이 나게 된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그동안 간첩행위에 대해서는 목적수행(간첩), 회합·통신, 잠입·탈출 등 국가보안법의 조항으로 처벌해왔다. 형법의 간첩죄는 ‘적국(敵國)’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아닌 북한에 대해서는 적용한 예가 없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형법개정안은 폐지되는 국보법의 기능을 일부 살려둔다면서 사실상 북한의 간첩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할 근거를 없애버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열린우리당측은 형법상 간첩죄와 내란죄로 간첩을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이를 운용할 공안 관계자들은 부정적인 반응이다.
무엇보다 북측 지령을 받아 활동하는 고정간첩을 형법상 간첩죄로 처벌하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 여당의 형법개정안은 현행 적국조항 대신 외국 또는 외국단체를 위해 간첩행위를 한 자를 간첩죄로 처벌한다고 규정했다.
문제는 현행 헌법이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북한은 외국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한 검사는 “간첩죄의 대상이 되는 ‘외국’에는 적국과 우방이 모두 포함되는데, 여당이 이렇게 처벌대상을 넓혀놓고도 정작 북한이 간첩행위를 할 경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대안은 형법상 간첩죄 적용시 북한을 ‘준적국’으로 간주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외국’을 간첩죄의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외국이 아닌 북한에 대해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현행 국보법과 열린우리당의 형법개정안의 비교이다.
남한에서 북한지령을 받아 주체사상을 퍼뜨리며 동조자를 포섭한다면
국보법에서는 7조 찬양·고무죄로 처벌한다. 이 조항에는 한총련 등 이적단체 구성 가입 죄목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형법개정안으로는 폭동을 준비하지 않는 한 북한지령을 받더라도 처벌되지 않는다. 개정안은 폭력을 목적으로 할 때만 내란죄가 적용된다고 규정해 놓았다.
남파공작원에게 군사기밀을 넘겨준다면
예를 들어 군부대 경비상황은 중대한 군사기밀이어서 이를 유출하는 것을 국보법은 중죄로 다룬다. 국보법 4조 목적수행죄는 북한지령을 받아 적국 또는 반국가단체에 군사기밀 등을 넘긴 행위를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위반한 경우가 통상 말하는 간첩행위다.
그러나 형법개정안은 외국 또는 외국인단체에 군사기밀을 넘겨줬을 때 간첩행위를 처벌토록 규정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법안대로라면 북한으로 군사기밀을 넘겨도 간첩죄로 처벌할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남파공작원을 동해안 여관에서 접선한다면
기존 국보법은 이를 ‘회합·통신’ 조항을 적용해서 처벌했다. 북한 지령을 받은 자와 모의했기 때문이다. 형법개정안으로는 이 접선이 폭력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남파공작원을 만나도 처벌할 수 없다. 심지어 이적단체인 한총련 핵심 조직원이 남파공작원과 폭동준비 등의 얘기 없이 헤어졌다면 이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휴전선을 넘어 밀입북했다면
국보법은 잠입·탈출(친북활동을 위해 남북을 드나든 행위)죄를 적용해서 처벌해왔다. 그러나 형법개정안에서는 밀입북한 행위 자체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밀입북한 뒤 북한의 지령을 받고 폭력 혁명을 시도해야만 내란죄의 예비·음모죄로 처벌을 받게 된다.
南派공작원과 접선해도 처벌 못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