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어극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칭경식(稱慶式)'을 전통예술극장인 광무대(光武臺)에서 열었으며,대한국(大韓國) 고종황제는 경운궁부터 광무대까지 행사 이동시 사용할 포드 또는 캐딜락 승용차 1대를 칭경식(稱慶式) 의전용 어차(御車)로 수입을 지시했다.
궁내부는 알렌 미국 공사를 통하여 샌프란시스코의 자동차 판매상 프레이저'로부터 포드의 A형 4인승 무개차 1대를 수입하였다. 알렌 미국 공사는 1884년 대한국에 와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으며,최초의 서양 병원인 광혜원을 세워 신임을 받고 고종 황제의 주치의를 지냈다.
인천항에서 하역하고 1899년 개통한 경인선 철도를 이용하여 1902년 개통한 한강철교를 건너 남대문역에서 내려서 경운궁까지 가야 했으므로 칭경식이 끝난 후에 도착하고 황제의 행차는 위엄이 있어야 하는데,차가 시끄럽게 소리나고 빨리 달려 황제 행차에 사용하지 못했다.
1908년 황실용으로 수입되었던 2 대의 차가 최초의 어차가 되었는데 한 대는 고종황제용 영국제 흑색 다임러 리무진이고,다른 한 대는 순종황제용 프랑스제 적색 르노 리무진이었다. 1910년 한 대를 더 수입한 차가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캐딜락 리무진이다.
고종황제가 어차를 타고 행차했다거나 일반인들이 행차 장면을 목격했다는 기록은 없으며 경술늑약(庚戌勒約) 이후인 1911년부터 순종황제는 캐딜락 리무진을,순정황후가 영국제 다임러 리무진을 탔으며,의친왕(義親王) 이강 공은 미국제 오버랜드를 애용했다.
세종이 만든 보루각(報漏閣) 자격루(自擊漏)를 복원하여 고궁박물관이 전시하고 있다.자격루(自擊漏)는 물의 흐름을 이용한 시보장치(時報裝置)를 갖춘 물시계이며 1434년 장영실(蔣英實) 이 제작했다.
세종은 하늘의 시간을 땅으로 가져와 백성에게 알려주고자 천문을 관측하였으며, 해시계와 물시계, 역서(曆書)를 만들어 반포하였다. 그러나 해시계는 밤에는 사용할 수 없어 물시계가 표준이 됐다.
운종가 종루에 큰 종을 걸고 통금을 알리고 도성문을 닫는 인정(人定)과 통금을 해제하고 도성문을 여는 파루(罷漏)를 울렸다. 오정(午正),인정,파루의 시각을 정확하게 알리려고 만든 것이 자격루다.
세종이 장영실에게 명하여 시각을 알리는 일을 맡길 시보인형을 나무로 만들었으며 시각을 스스로 알려 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이 세종의 경천애민(敬天愛民)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자격루는 물을 일정하게 흘려보내는 수수호(受水壺), 흘러온 물을 받는 파수호(播水壺),12지시마다 종을 울리는 시기(時機),1경-5경까지 북과 징을 울리는 경점시보기구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파수호의 위치를 1열 3단으로 배치했다.
김민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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