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 앵커 (이하 김갑수) : 한 푼도 줄 수 없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이 한마디가 갈등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부족할까요? 차명재산을 둘러싼 삼성가의 갈등이 점입가경입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 씨가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지난 2월, 상속재산의 일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죠. 이것을 시작으로 두 달 넘게 삼성가의 집안싸움이 뉴스를 오르내리고 있고요. 급기야는 이건희 회장이 작심한 듯 30년 넘는 집안 내력까지 공개했습니다.
가족 간 감정싸움이고, 남의 집안싸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삼성가의 집안 다툼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차명재산입니다. 그리고 이 차명재산을 둘러싼 다툼의 기원은 짧게 잡으면 지난 2007년, 엄청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폭로한 삼성 비자금파문입니다.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특검을 불러왔고, 수사결과 삼성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물러나야했죠. 그리고 차명재산은 유익한 일에 쓰겠다는 삼성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 이건희 회장은 복귀했고 사면 받았습니다. 반면에 차명재산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던 계획은 별다른 소식이 없는 채, 자 ,우리는 특검 때 드러난 차명재산이 삼성집안싸움의 화근이 되는 걸 지켜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두가 좀 길었습니다만 이 분을 전화로 모신 이유를 설명 드리려니 좀 장황해졌습니다. 지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 비자금 문제를 폭로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인국 신부, 오늘 파워인터뷰에서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인국 신부 (이하 김인국) : 네, 안녕하십니까?
앵커 : 5년 전 기자회견하실 때요. “대한민국의 경제 민주주의가 진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떠오릅니다.
김인국 : 네, 정치 민주화의 원년이던 1987년에 사제단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밝혔는데요. 꼭 그와 같은 심정으로 20년이 지난 2007년에 삼성 비자금의 진실을 밝혔습니다. 이른바 삼성 문제를,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건희 씨 일가의 비자금 문제를 잘 풀면 요즘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경제 민주화의 매듭이 풀어지겠구나 싶은 기대감에서 했습니다.
앵커 : 5년 전 기자회견에 김인국 신부님의 마음이시라고 하는데요. 우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테니까요. 지난 5년 세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개인적인 상황을 여쭤보는 겁니다.
김인국 : 삼성과 잘 헤어져지지 않더라고요. 제가 보낸 5년 동안 대한민국이 갖고있는 질병이 결국은 삼성의 병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삼성특검 2년 후인 2009년에 용산 참사 현장에 가보니까 현장에 삼성물산이 있었고요. 2010년 4대강 공사 현장도 마찬가지고, 지금은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에 가 봐도 삼성이 버티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재벌의 탐욕을 다독거리는 경제 민주화가 해결되지 않는 한,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은 물론이고 한반도의 평화와 생태계 전반의 위기 문제가 해결되기 참 어렵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앵커 : 지금 삼성가의 싸움이 화제인데요. 어느 언론에서는 타이틀 크게 만들어서 40년 넘는 막장드라마라고 표현 했더군요. 이 양상 보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요?
김인국 : 묘하다는 마음입니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성경 말씀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요. 왜냐면 형제들의 다툼만 아니라면 영영 감춰질 문제였잖아요. 세상사가 참 묘합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자기들끼리 알아서 들추고 있잖아요. 또 한 가지는 한반도 유사 이래 이분들이 가장 큰 부자들인데요. 재물 싸움이 벌어지면서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앵커 : 이 다툼의 핵심, 원색적인 비난 설전은 망외의 화제이지만 그 본질은 차명재산을 둘러싼 문제일 텐데요. 이맹희 씨가 요구한 액수가 7천억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더군요. 도대체 어떤 근거로 요구하고 있는지 내용으로 들어가 봤으면 좋겠는데, 신부님이 추측하신 바가 있습니까?
김인국 : 방금 옳게 지적하셨는데요. 말씀하신대로 형제들의 싸움이 문제의 차명재산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부분을 제대로 부각시킨 언론이 드물더군요. 이 다툼은 삼성특검이 비자금 4조 5천억 원을 밝혀내고도 이건희 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이것은 선대가 물려준 재산이라고 한 것에서 문제가 된 겁니다.
앵커 : 2008년 특검의 결과로 나온 얘기죠?
김인국 : 그렇습니다. 이 문제를 촉발시킨 장본인은 이건희 씨 자신이고요. 조준웅 삼성 특검입니다. 특검 팀이 밝힌 돈을 유산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했단 말이에요. 소극적 수사로 일관한 밝힌 돈이 4조 5천억 원이었잖아요. 또 이것을 유산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당연히 이건희 씨는 그것을 다른 형제와 나눠야죠.
앵커 : 특검을 통해 비자금 실체가 상속재산이라고 결론이 났고요. 그러다보니까 남은 형재들은 유산이라면 우리도 받을 권리도 있다고 해서 싸움이 빚어졌다는 거죠. 당시 특검이 그러니까 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은데, 우리나라 특검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요?
김인국 : 조준웅 특검 팀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는데 못한 문제죠. 지금 새로운 특검이 이 문제에 접근한다고 해도 진실을 밝힐 것 같은 생각이 안 들어요. 그만큼 우리 사회 전체가 삼성의 영향력 하에 놓여있기 때문인데요. 당시 특검팀이 고발한 삼성 에버랜드 헐값 매각 등 문제들이 이후 재판에서 줄줄이 무죄 선고를 받았거든요. 힘없는 재판부가 마지못해 솜방망이 처벌한 것을 대통령이 나서서 이건희 씨를 사면했단 말입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앵커 : 삼성의 사회적 책임, 영향력이 워낙 크다보니 관심이 모이고요. 재벌 기업 회장의 출근길에 기자들 수십 명, 심지어 수백 명이 모여서 한 마디 말을 듣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외국인들 보기에 진기한 풍경이라는 보도도 봤습니다. 삼성가 차명재산 다툼과 관련한 언론들의 보도 태도와 성향을 보면 김인국 신부님께서도 느껴지는 바가 있으실 텐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인국 : 달을 가리켜야 하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손가락에 모으게 하고 있습니다. 기왕 이런 문제를 언급하려면 시민들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모두가 토론해야할 쟁점을 선명하게 부각시켜야 하는데...
앵커 : 이 다툼의 본질이 제대로 조명되기 보다는 흥밋거리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는 말씀인 거죠?
김인국 : 그렇죠.
앵커 : 김영철 변호사 양심선언 후 5년이 지났는데요. 변한 부분,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텐데요. 김 신부님이 보시기에 삼성은 긍정적으로 많이 변했습니까?
김인국 : 삼성의 문제가 아니고, 정확히 이건희 씨 일가의 문제였는데요. 그분들에게는 무척 행복한 5년이었을 겁니다. 숙원 사업이었던 경영권 성계 깔끔하게 완료됐고, 아들딸 지분도 무척 확대됐고요. 무엇보다 사회적 장악력이 견고하고 영속적이라는 것이 입증됐거든요. 또 부수적으로 삼성은 돈을 줘도 문제없고, 또 그 돈을 받아도 문제없다는 것이 확인 됐으니까요. 그들은 변할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앵커 : 시장 권력이 정치권력을 압도해가는 그런 시대를 맞이했다는 건데, 특정 재벌 기업의 행태 앞에서 우리 사회 모습은 어떻게 보이시는 건지요?
김인국 : 우리 시민들 마음이 너무 오그라들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이건희 씨가 한국 사람들 정신 차려야 한다, 한국 사람들 제발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훈계를 하고 있거든요. 이런 마음이 서로 문제죠. 지금 서민들이 벼랑 끝에 몰리고 중산층이 붕괴상태라고 하는데, 사실은 마음부터 무너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앵커 : 시민사회가 무기력증에 빠졌다고 진단하시는 것 같군요. 김인국 신부께서는 커다란 사회적 현안이 있을 때마다 용기있는 발언을 해오셨습니다. 용산 참사 때도 전면에서 발언을 하셨는데요. 자신의 삶의 결부해서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실 기회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좀 더 나은 사회를 향해서 많은 분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요. 말씀 좀 남겨주시죠.
김인국 : 생각하는 백성이라야만 산다고 하셨던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이 자꾸 메아리치고요. 우리 모두 생각이 깊어야 한다, 우리 모두 마음 좀 가다듬어야 겠다, 자꾸 남의 문제로만 불구경하는데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언젠가 내 집에 불난다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앵커 : 굉장히 민감한 문제에 용기 있는 발언을 해 주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인국 신부와의 인터뷰였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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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국신부>YTN 라디오 김갑수의 출발새아침 인터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