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족이라는 단어는 역사 시간에 많이 들어왔기에 그리 낯설지 않다. 신라 말 고려 초의 사회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 세력을 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박두웅 언론인] 토호라는 말도 그 당시부터 쓰이긴 했지만, 호족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호족보다는 세력이 약한 집단을 지칭하던 말이다. 결국 호족은 그 지방을 장악한 수십, 수백 가구로 구성된 친족 집안 전체를 가리키지만, 토호는 그 지방에서 행세하는 한둘, 혹은 몇몇 집안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들어서는 두 단어가 자아내는 이미지에 더 큰 차이가 생겼다. 호족은 태조 왕건 드라마 때문이겠지만 개혁적이고 합법적인 이미지를 주지만, 토호는 신문 지상에 늘 척결 대상으로 분류돼 부패하고 탈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현대사회에서 호족은 아예 생겨날 수 없는 집단이기에 면죄부를 받았고, 토호는 실존하는 집단이기에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각종 이권에 개입하면서 지역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토호세력. 그들의 활동은 치밀하고 조직적이다. 그들은 관을 장악하고 인맥을 관리한다.
산업단지 조성이나 개발, 그리고 대단위 건출물 준공과 관련 된 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석연치 않은 준공허가마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이권을 챙겼을 만한 용도변경이 있다. 부동산 업자들이 더 잘 알듯 용도변경 한 두 번이면 대박이 터진다. 이런 작업에는 언제나 지역토호 세력과 고위직 공무원이 개입되어 있다.
지역토호세력의 위세가 센 곳일수록 선출직인 지자체장은 바뀌어도 그 고위직 공무원은 개발관련 업무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는 비아냥도 있다.
각종 정보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청이나 동사무소라는 관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파트너다. 작게는 마을길이나 마을회관을 건립하는 것부터 크게는 산업단지 조성까지 손을 대기 위해선 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역토호 세력들이 음으로 양으로 공무원과 결탁하는 이유이다.
눈치 빠른 공무원들은 이런 와중에서 줄을 탄다. 승진을 향한 탐욕을 숨기지 않는다. ‘시장 편들기’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대세에서 밀리면 자기만 손해라는 팽배한 공무원사회의 불편한 분위기가 그의 잠을 설치게 한다.
많은 시의원들도 개발과 관련된 현안에 끼어들어 ‘개발 찬성론’을 주도한다. 민원이라는 탈을 쓰기엔 이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 심지어 언론인이나 시민사회단체 구성원도 그들의 인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조차 혈연에 동창회 등 친목조직까지 촘촘히 엮어 있는 지역사회에서 튀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자위한다.
이처럼 풀뿌리 보수세력들은 대부분 지역토호이거나 터줏대감으로 오랫동안 그 지역에 살며 관계, 언론계, 정치계, 업계에 두루 손을 뻗치고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기 때문에 그들의 조직망은 쉽사리 해체되지 않는다.
과거나 현재는 물론이고, 어디에든 토호 세력은 있다. 어쩌면 그들은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정도의 차이다. 탈법과 부패가 만연하고, 언론도 공무원 사회조차 그들 앞에 숨을 죽이는 지역사회는 미래가 없다. 더 늦기 전에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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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에 눈먼 지역토호 세력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