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이용훈 대법원장이 얼마 전 새로 고등법원 부장으로 승진한 법관들과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특정 사건의 판결에 관하여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판결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고 한다.
이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고, 대법원장이 대외적으로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감수하고서 자신의 소신을 밝힌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존재와 권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아닐 수 없어 이에 대한 당혹감을 금할 수 없다.
과거 우리나라 사법부가 행한 재벌이나 고위층 인사 등 특정인, 특정세력에 대한 유리한 판결로 인하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고, 잘못된 판결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비판을 하는 것은 민주사회에 있어서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이 번 특정 사건의 법관도 법률과 양심에 따라 그 판결을 하였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고, 설사 잘못된 판결이라면 상급심에서 시정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또 담당 법관이나 사건당사자가 아닌 이상, 문제가 된 사건의 실체적인 진실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일이므로, 특정 사건의 결과만을 보고 그 판결이 유전불벌의 논란을 일으킬만한 사안인지 여부를 함부로 논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이번에 대법원장이 구체적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사법사상 처음이고, 대법원장 스스로 법관의 판결에 간섭할 수도 없고, 간섭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사법부의 수장이면서 법관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대법원장은 구체적 사건의 판결에 간섭하거나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을 절대로 자제되어야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법원과 법관의 독립을 내용으로 하는 사법부의 독립은 헌법의 절대적 가치이고,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은 사회적·정치적 외부세력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며, 대법원장을 포함한 사법부내의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사법부에 불신을 가지는 것은, 국민 정서나 여론을 고려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내외부적 압력으로 인하여 판결의 공정성이 훼손되었다는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번 대법원장의 발언은 그 자리에 참석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법관들에게는 앞으로 담당하게 될 상급심의 재판에 상당한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여야 할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여야 하고, 법관이 외부세력으로부터 부당하게 압력을 받는 것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 번 대법원장의 발언은 도리어 사법부의 독립을 저해하는 일으로서 결코 온당하지 못하고, 나아가 특정사건의 변호인들에 관하여 전관예우의 문제를 제기한 것도 합리적 의심이 없이 국민의 불신만을 증폭시킨 것으로서 신중하지 못한 처사이다.
우리는 대법원장에 대하여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사법부의 독립을 사수하여 달라는 비판적 지지를 보낸 바가 있으나, 지난 번 법원의 과거 판결에 대한 재조사에 이어서 이 번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사법부는, 권력이나 외부세력에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적인 재판을 수행해달라는 것이라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자 한다.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한 입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