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고조 22년) 갑신정변 때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익(閔泳翊)이 개화파 인사들에 의해 치명적인 자상(刺傷)을 입고 미국 선교사이자 마이애미 의과대학에서 공부한 의사였던 알렌이 나타나 민영익을 살려냈다. 고조는 알렌을 궁정의 시의관으로 임명하고, 2월 29일 한성(漢成)의 재동(齋洞)에 활인원(活人院)과 혜민원(惠民院)을 개편해 서양식 근대 의료 기관인 광혜원(廣惠院)을 설립하도록 윤허했다.
광혜원(廣惠院)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에 소속되어 있었고 광혜원의 원장은 광혜원당랑(廣惠院堂郞)으로 불렸으며 1885년 3월 12일 제중원(濟衆院)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1886년 3월 29일에는 양반 자제 중에서 학생 16명을 선발하여 이 중 12명이 본과에 진급하는데, 이를 한국 근대 의학 교육의 시초이다.
1893년에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의 의과대학 교수였던 올리버 에비슨이 제중원을 인계받았으며 1899년(광무 3)에 제중원의학교를 설립하고 학생들을 뽑아 의학교육을 실시했다.1899년 4월에 설립된 내부병원(內部病院)은 1900년에 광제원(廣濟院)으로 개칭되었고, 1907년 3월 광제원이 폐지됨에 따라 대한의원(大韓醫院)으로 이관했다.
우정국(郵政局)은 최초의 우편행정을 관장한 관아이며 1884년(고조 21) 역참제(驛站制)에서 탈피하여 근대적 통신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1882년(고조 19) 12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내에 우정사(郵政司)가 설치됨으로써 근대적인 우편제도가 시작했다.
초대 협판(協辦)에는 홍영식(洪英植)이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홍영식이 보빙부사(報聘副使)로 미국을 방문,시찰하고 미국의 우편제도를 고조에게 건의하여 1884년 3월 군국사무아문(軍國事務衙門) 안에 우정총국이 설치됐다.전의감(典醫監) 터에 우정총국 청사를 두고, 우정총관 홍영식(洪英植)이 일련의 법령을 준비하는 등 개국 준비를 했다.
1884년 10월 1일부터 우편업무를 시작했으나 12월 4일 우정국의 개업을 알리기 위한 축하연을 베푸는 자리에서 김옥균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켜 폐지되었다. 우정국 편제는 책임자인 총판 1명, 방판 1명, 관리 업무를 담당한 규획과(規劃課), 우체국 사무를 담당한 발착과(發着課), 경리 사무를 담당한 계산과를 두었으며, 인천에 분국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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