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조선왕조가 하늘의 명을 받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정당하게 건국하였음을 세상에 널리 강조하였으며 고려왕조의 도읍인 개경에 대한 정치적 불안과 풍수 지리설의 영향, 민심의 쇄신을 위해 천도를 결정했다. 새 도읍지를 물색하던 중 무학국사와 하륜(河崙)의 의견에 따라 1393년에 도읍지를 한양(漢陽)으로 정하고 1394년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설치했다.
1394년 11월 26일에 남쪽에 한강이 있어 교통상 조운(漕運)이 편리한 한양으로 천도(遷都)를 하였다. 태조(太祖)는 궁궐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 전조후시(前朝後市) 원칙에 따라서 도읍을 건설했다. 서쪽에 사직(社稷)을 완공하고, 궁궐을 세운 뒤, 그 동쪽에 종묘(宗廟)가 완성되었다. 태조는 한양(漢陽)의 방위를 위하여 백악산(白岳山)·낙산(駱山)·목멱산(木覓山)·인왕산(仁王山)을 잇는 약 17km의 성곽을 쌓기 시작했다.
1395년에 한양(漢陽)을 한성(漢城)으로 개칭하고 1395년에는 한성의 행정구역을 설정했다. 한성(漢城)은 동·서·남·북·중부의 5부(五部)를 두고 그 밑에 52방(坊)을 두었고 같은 해 9월에 성벽과 문루(門樓)가 완성되어 한성(漢城)은 주위에 견고한 성벽이 쌓여진 성곽도시가 되었다. 1398년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정종이 즉위하면서 2년 동안 도읍을 개경으로 옮겼으나, 태종(太宗)이 즉위하자 곧 한성(漢城)으로 다시 환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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