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묘제례(太廟祭禮)는 조선 국왕과 왕비,대한제국 황제와 황후의 신위를 봉안한 태묘(太廟)에서 지내며, 태묘제례악(太廟祭禮樂)에 맞추어 진행된다.
태묘 정전에는 조선 태조에서 대한제국 순종 융희제에 이르기까지 19실(室)의 신위를, 별전(別殿)인 영녕전에는 16실의 신위를 봉안하고 있다.
정전은 서편을 위로하여 1실이 있고 19실이 동편 끝에 있으며, 영녕전에 목조,익조,도조,환조 등 태조 위의 4대조 신위가 있다.대한 황실 황위 승계 1순위 의친왕 신주를 태묘에 부묘(祔廟)하고 영친왕 신주를 천위(遷位)해야 한다.
부묘(祔廟)시에 조상에 배알(拜謁)하는 부알판위(祔謁版位)는 태묘 정전의 신문(神門)에서 정전으로 들어가는 부묘(祔廟)할 때 신주를 봉안하여 모시는 신로(神路)의 중간 쯤의 동쪽에 있는 사각의 검은 전돌을 깐 판위이며 3년상을 치룬 국왕이나 왕후의 신주(神主)를 모신 가마 요여(腰輿)를 잠시 주차하고 부알제(祔謁祭)를 지내던 자리이다.
태묘 정전에 이미 봉안되어 있는 태조 이하 모든 신주들을 신실 앞에 있는 신탑에 꺼내 놓고 부알판위(祔謁版位)에서 태묘 정전에 먼저 부묘(祔廟)한 조상들에게 배알한 후 밤나무 신주를 정전에 모시는 의식을 행한다.
태묘제례(太廟祭禮)는 춘하추동 4시(四時)와 12월 납일(臘日)에 봉행하였으며 영녕전(永寧殿)은 태묘(太廟) 정전과 더불어 향사(享祀)하였다.제향(祭享)은 국왕이 직접 행하는 친행(親行)과 대신으로 대행하게 하는 섭행(攝行)이 있으며 친행과 섭행은 제관의 명칭과 품계(品階) 또는 축문(祝文)이 다르다.
절차는 홀기(笏記)의 창홀(唱笏)에 따라 진행되고 제기(祭器)는 63기가 있으며, 제물(祭物)은 3생(三牲), 2갱(二羹), 서직도량(黍稷稻梁), 2제(二齊), 3주(三酒), 6과(六果), 6병(六餠), 2포(二脯), 4해(四醢), 4조율료(四俎率膋), 모혈(毛血)을 쓴다.
제수(祭需)는 매우 엄격하고 정성스럽게 차려졌으며 곡식이나 고기는 날 것을 그대로 올린다. 날 것과 맨국을 쓰는 것은 불을 이용하지 않은 선사시대에 생식을 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례는 제관이 정해진 자리에 서는 취위(就位)·영신(迎神)·신관((晨課:강신)·진찬(進饌)·초헌(初獻)·독축(讀祝)·아헌(亞獻)·종헌(終獻)·음복(飮福)·철변두(撤籩豆)·망료(望燎) 순으로 진행된다.
제복(祭服)은 면류관(冕旒冠)과 9장복(九章服)으로 이루어진 9장면복(九章冕服)을 착용하였는데, 면류관은 9류(九旒)를 늘어뜨리고 오채옥(五彩玉)을 꿰었다. 면류관의 모(帽) 위에 장방형 판은 짙은 흑색, 안은 홍색이며, 앞뒤에 황·적·청·백·흑·홍 녹색의 주옥(珠玉)으로 구슬줄을 9류ㆍ12류씩 매달고 관 위에는 옥잠(玉簪)을 꽂았다.
9장복은 겉은 흑색, 안은 청색으로 한 대례복(大禮服)으로 상의(上衣) 양 어깨에는 용(龍)을 수놓고, 등에는 산(山), 양쪽 소매에 화(火:불꽃무늬), 화충(華蟲:꿩), 종이(宗彛:술 그릇)가 각 3개씩 들어가며, 하의(下衣)에 초(藻:수초), 분미(粉米:쌀), 보(黼:도끼), 불(黻:亞자 무늬)가 새겨진다.
1897년 고조(高祖)가 1대 광무제에 등극하고 12장복은 9장복에 일(日), 월(月), 성신(星辰)이 추가됐다. 황제관은 12류면(十二旒冕)이 되었고 황태자관은 9류면(九旒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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