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조선 왕실과 대한 황실의 복식
김민수 한민족운동단체연합 홍보국장
조선 국왕의 대례복(大禮服)인 면복은 면류관,곤복으로 구성되어 있다.면류관은 사각형의 천판에 면류(옥구슬)를 매단 관이며 곤복은 중단,의,상을 입고 대대를 두르고 폐슬,혁대,패옥,방심곡령,수,말,석,규를 착용했고 장문이라고 해서 여러 무늬가 수놓이는데 조선 국왕은 9장문,대한국 황제는 12장문이다.
중단은 겉옷 안에 입는 옷인데 두루마기와 형태가 비슷하지만 소매가 넓으며 깃에는 불문이 금박되어 있다.의는 저고리,상은 치마,대대는 허리띠와 비슷한 것이다.폐슬은 허리부터 무릎 아래에 드리우는 사각형의 천이며 장문이 수놓아져 있으며 혁대는 품대로 허리에 두르는 사각형의 띠로 신분을 나타낸다.
패옥은 허리에서 양 옆으로 늘어뜨리는 옥 장식이며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방심곡령은 둥근 고리 모양에 사각형이 매달려 있는 형태로 가슴에 늘어뜨린 것이다.
수(綬)는 후수라고도 하며 허리에서 뒤쪽에 늘어뜨리는 띠이며 품계에 따라 문양이 다르며 말(襪)은 버선을 말하며 석舃)은 신발을 말하고 규(圭)는 손에 드는 옥판인데 위는 삼각형 모양이고 아래는 네모지다.
국왕이 면복(冕服)을 입으면 왕비는 그에 맞추어 적의(翟衣)라는 의복을 착용한다. 적의는 대례복(大禮服)으로서 활수대의(闊袖大衣)의 포제(袍制)에 속하는 적의와 중단(中單)·상(裳)·폐슬(蔽膝)·대대(大帶)·혁대(革帶)·패옥(佩玉)·수(綬)·말(襪)·석(舃)을 착용하고 규(圭)를 든다.
조복은 왕과 문무백관들이 설날,동짓날의 하례,의식에 착용하던 예복으로 신하들이 입는 백관복 가운데 가장 화려한 옷으로 금관을 같이 쓴다고 해서 금관조복이라고 한다.왕의 조복은 원유관을 쓰고 강사포(絳紗袍)를 입었는데 고종이 황제에 오르면서 황제가 착용하는 통천관(通天冠)으로 바뀌었다.
포(袍)는 붉은 강사 또는 홍단으로 만들었는데 깃,도련,소매 끝에 붉은색 선을 두르며 중단은 백초,백라,백사 등의 비단으로 하며 붉은 색 깃에 불문을 그린다.폐슬(蔽膝),대대(大帶),패옥(佩玉),수(綬),규(圭),방심곡령 등은 면복과 동일하며 말(襪)은 흰색,석(舃)은 흑색이다.
왕비의 대례복인 황원삼(黃圓衫)은 다홍색과 남색 색동 끝에 흰 한삼을 달았고,비빈의 대례복인 홍원삼(紅圓衫)은 자적색(紫赤色) 혹은 다홍색 길에 노랑색·남색 색동 끝에 흰 한삼을 달았다.공주,옹주의 대례복인 초록원삼은 연두색 길에 다홍과 노랑 색동 끝에 흰 한삼을 달았고 가슴에는 봉(鳳)흉배를 달았다.
큰 띠에는 금박문양을 넣었는데 황원삼에는 용문(龍紋)을,홍원삼에는 봉문(鳳紋)을,초록원삼에는 화문(花紋)을 넣었다.
1895년 을미개혁(乙未改革)으로 단발령과 함께 제도적으로 양복이 공인되었고 1899년 외교관의 복식을 양복화하였으며 1900년 문관의 예복을 구미식으로 바꿔 대한국의 관복제도가 양복화되었다.관복이 양복화됨에 따라 상류층은 양복을 입기 시작하였으나 일반인들은 한복을 착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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