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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4대문으로부터 100리 안 조선 왕릉
김민수 한민족운동단체연합 홍보국장
조선 왕릉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도성 4대문으로부터 100리 안에 두어야 한다는 입지조건이 명시되어 있으며 여주의 영녕릉과 영월의 장릉을 제외하면 도성 4대문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바람,물,불,나무,흙의 화가 없고,산을 등지고,앞에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추어야 하며 뒤로 주산이 펼쳐지는 가운데 산허리에 봉분이 위치했다.
그리고 청룡과 백호가 좌우를 감싸며,봉분 맞은 편에 마주하는 산맥이 있어야 훌륭한 자리라고 여겼다. 정해진 입지의 어느 방향에 봉분이 위치할 것인지 어느 방향을 바라보도록 조성할 것인지의 결정도 풍수적인 형국이 중요한 기준이었다.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왕릉의 입지를 선택하는데 수개월 내지 수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했다.
조선 왕릉은 자연의 지세와 규모에 따라 단릉,쌍릉,합장릉,동원이강릉,동원상하릉,삼연릉,동봉삼실 등 다양한 형식으로 봉분(封墳)의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왕과 왕비의 무덤을 단독으로 조성한 것을 단릉(單陵)이라 하고,평평하게 조성한 언덕에 하나의 곡장을 둘러 왕과 왕비의 봉분을 좌상우하의 원칙에 의해 쌍분으로 만든 것을 쌍릉(雙陵)이라 한다.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것은 합장릉(合葬陵)이라 하며,정자각 뒤로 다른 언덕에 별도의 봉분과 상설(常設)을 배치한 것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라 하고 왕과 왕비의 능이 왕상하비(王上下妃)의 형태로 조영된 것은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라 한다.왕과 왕비,계비의 봉분을 나란히 배치하고 곡장을 두른 것은 삼연릉(三連陵)이라 하며 왕과 왕비,계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것은 동봉삼실(同封三室)이라 한다.
조선의 국왕은 종묘가 아닌 왕릉에 직접 행차하여 산릉제례(山陵祭禮)를 지내는데 봄 ,여름,가을,겨울의 사시,동지(冬至) 후 3번째 술일(戌日)의 납일(臘日),한식,단오,중추의 속절(俗節),초하루와 보름의 삭망(朔望)에 치르는 정기적인 제례와 임금이 친히 능에 와서 치르는 친제(親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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