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릉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도성 4대문부터 100리 안에 두어야 한다는 입지조건이 명시되어 있으며 여주의 영녕릉과 영월의 장릉을 제외하면 도성 4대문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산을 등지고 앞에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추어야 하며 청룡과 백호가 좌우를 감싸며 뒤로 주산이 펼쳐지는 가운데 산허리에 봉분이 위치했다.
조선 국왕은 왕릉에 직접 행차하여 산릉제례(山陵祭禮)를 지내는데 봄 ,여름,가을,겨울의 사시,동지(冬至) 후 3번째 술일(戌日)의 납일(臘日)과 한식,단오,중추의 속절(俗節),그리고 초하루와 보름의 삭망(朔望)에 치르는 정기적인 제례와 임금이 친히 능에 와서 치르는 친제(親祭)를 봉행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릉 홍릉은 신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어도가 설치되어 참도(參道)가 3개의 단으로 되어 있고 월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침전(寢殿)의 정면에 설치되어 있어 홍살문과 직선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석물이 참도와 침전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문인석과 무인석이 마주 보고 서고,기린,코끼리,사자,해태,낙타,말이 순서대로 신도의 양쪽으로 정렬하고 있다.
유릉은 대한제국 순종황제와 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閔氏) 그리고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尹氏)의 능이다. 대한제국이 건국되고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 조성도 명(明)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받았다.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으며, 홍살문까지 기린·코끼리·해태·사자·낙타·말의 순으로 석수(石獸)를 세웠다.
서울시,경기도, 강원도에 소재한 조선 시대(1392년~1897년) 506년 동안 존속된 25대 왕과 왕비 및 사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릉 38기 및 대한 시대(1897년~1910년) 황제와 황후의 릉 2기, 총 40기를 망라한 ‘조선 왕릉 및 대한제국 황제릉’이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황실문화재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경운궁,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희궁,인경궁,별궁,행궁,종묘,환구단,사직단,선농단,선잠단,영희전(永禧殿),왕릉의 복원, 관리를 총괄할 황실문화재관리소를 경운궁 석조전에 신설하여 궁, 단, 묘, 전, 능, 원, 묘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