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였고 한국광복군이 미군특수부대(OSS)와 국내정진을 계획하고 침투훈련 중에 8ㆍ15 대한 광복이 되었고 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격으로 귀국해 국민의 뜻에 따라 정부를 재수립하기로 결의했다.
미 군정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격으로 입국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임정 요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들어오는 조건으로 1945년 11월 23일 1차 귀국하고 12월 1일 임정 요인들이 2차 귀국해 역사적인 첫 국무회의가 12월 3일 돈의문 터 옆에 위치하고 있는 경교장(京橋莊)에서 개최됐다.
이후 경교장에서 수시로 국무회의가 개최됐고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되자 12월 28일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경교장에서 긴급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반탁운동을 주도하며 12월 31일 임시정부 내무부 포고령을 선포하고 미 군정에 행정권의 이양을 요구하기도 했다.
경교장은 남과 북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려고 할 때 김구 선생이 분단을 막고자 1948년 남북협상을 추진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무회의를 개최한 경교장을 대한민국 임시정부,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발전의 역사를 전시,홍보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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