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李奉昌) 의사는 1931년 1월 대한광복운동에 투신하고자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간 이봉창 의사는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본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왕 폭살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한달에 한번씩 김구 단장을 만나 거사를 준비했다.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1931년 12월 17일 김구 단장의 전송을 받으며 동경으로 출발했다.
동경에 도착한 이봉창 의사는 히로히토 일왕이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열리는 신년 관병식(觀兵式) 참석 정보를 입수하고, 이 날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1932년 1월 8일 앵전문(櫻田門) 앞에서 일왕(日王)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했으나 일왕 폭살(爆殺)에는 실패하였고 품안의 태극기를 꺼내 대한독립 만세'를 3번 외친 뒤 현장에서 체포된 이봉창 의사(義士)는 9월 동경 대심원(大審院)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이치가야형무소(市谷刑務所)에서 순국(殉國)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일본 제국주의가 신격화해 놓은 일왕을 대상으로 하였고, 거사(擧事) 장소가 일제 수도 동경이었다는 점에서 비록 일왕 폭살(爆殺)에는 실패하였지만 일제 총독부 통치에 신음하던 한민족에게 대한 광복의 의지를 북돋우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광복운동에 새 활력소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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