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는 ‘단독자(單獨者) 인간(人間)’에 대한 관심,’을 거론 하며, ‘인류(人類)가 지구
(地球) 에 살며 세계(世界)에 거주(居住)한다’는 사실에 생각의 중심을 두고 있다 말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 - 1975년 12월 4일)는 세속적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했다. 쾨니히스베르크 (이 도시는 이마누엘 칸트의 고향이다) 베를 린에서 자랐다.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에게 철학을 공부했다 한다. 하이델베르 크로 이주했다 한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카를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입각하여 사랑의 개념에 대한 논문을 썼다 한다. 독일에서 피신하여 파리로 갔다 한다. 문학 평론가이며 마르크스 신비주의자인 발터 벤야민과 친구가 되었다. 아렌트는 프랑스에서 도주해야 했다 한다. 1940년에, 아렌트는 독일 시인이자 철학자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결혼했다 한다. 남편과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렌트는 하이데거와 관계를 회복했다 한다. 한나 아렌트는 ‘아히히만 공판’에 대한 보고서(나중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라는 책으로 발전하게 된다)에서 “악이 근본적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진부함(banality: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활동이나 비활동이 낳을 결과에 대한 비판적 사고 없이 명령에 복종한다고 다수 의견에 따르려 하는 경향)의 작용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아렌트는 ‘생각없음(thoughtlessness)’이 결과적으로 ‘악의 진부함’을 낳는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는 철저히 파편화되고 소외된 (피지배된) 개인들과 그들의 수동적이고 마치 죽어 있는 듯한 듯하며 ‘생각없이’ 모든 것을 안이하게 수용하는 생활에 던져진 강렬한 메시지로 작용하였다 언명했다. 아닐지도 모른다. 지배와 피지배가 숙명이 된 사회 현상 속에서 ‘평범함’ 또는 ‘생각없음’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는 수단’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지배에 의하여 파멸된다는 공포에 기인하는 어쩔 수 없는 그리고 조직의 탐욕적 참여일 것’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결국 피지배에 찌든 단일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궁극적으로 존경과 자아실현이라는 관건을 태생부터 포기할 수밖에 없는 ‘평범’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yekhman, 1906년 3월 19일 - 1962년 6월 1일)은 독일인이자 오스트리아인이다. 1945년, 나치 독일이 해체되고,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11일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의 모사드 요원들에게 체포되고,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 전쟁범죄, 반인도적범죄 등 15가지 혐의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고, 1962년 6월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한다.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holocaust: 대참사; 유대인 대학살; 대파괴)를 부정’하였다 한다. 거짓이다. ‘유대인을 강제 추방한 것은 부정하지 않았지만, “전체주의적 총통(아돌프 히틀러를 칭하는 것임) 체제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 말했다 한다. 아마도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여인의 기둥으로서, 성실과 열정을 가진 철저한 군인이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명령의 옳고 그름을 구분하여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정한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년 4월 20일 - 1945년 4월 30일)는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소속이었다. ‘국가(國家)’와 ‘사회(社會)’, ‘독일’과 ‘노동자(勞動者)’란 단어가 들어있다. 히틀러는 군대를 대량 모집하여 취업률을 늘렸고, 전쟁 자금이나 국가 민족의 희생양으로 유대인을 지목하여 독일 게르만족의 지지를 얻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과 집시, 동양인들과 흑인, 그리고 슬라브인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나치 강제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학살됐다.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 가운데는 동성애자와 장애인도 있었다. 그 이유는 장애인과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가 민족의 우수성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회적 약자들이 희생되었으며, 지배와 피지배의 국가권력에 의한 사회적 학살이 자행됐다. 국민은 어떤 인간이 나누고 지배하는 대상이 아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우수함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유대인의 부를 강탈했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이란 미명 아래 군대를 양성하고, 전쟁을 준비하여 게르만 민족이 아닌 모두를 향해 총뿌리를 겨누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지워지지 않는 세계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다. 지옥문을 연 부(富: 돈과 영토)와 세계인의 지탄(指彈)을 받을 게르만 민족의 우수함을 챙기기 위해 그랬을 것이라 본다. 착각과 망상은 탐욕과 패망을 낳는다. 세계인의 평화 열망을 몰랐던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과 자신을 포함한 평범한 무리 모두를 패망으로 몰아갔다. 지옥문을 열었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는 히틀러 같은 거짓과 조작 탐욕의 명분을 내세우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민족정기(民族精氣)는 영원토록 융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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