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은 국가가 휘두르는 각종 권력과 권한을 떼 내어 지방에다 옮겨 붙이는 외과 수술적 개혁이다. 휘두르던 권력과 권한을 떼어주어야 할 중앙의 정, 관, 사법, 언론 등 제 세력이 따라서 당연하게 반대의 칼을 뽑아 든다.
중앙의 관료세력이 분권에 저항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상식으로 알고 있다. 구태여 그것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역민들의 ‘표’를 얻어 금배지를 다는 국회의원들도 사실은 대개 분권반대 세력이다. 국회의원들은 평소 행정부를 상대로 견제와 감시의 권한을 휘두르는 데, 지방분권이란 곧 자신의 통제대상을 그만큼 약체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자기가 휘두를 권력의 크기도 작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놓고 반대는 못하지만, 그들도 틈만 있으면 분권반대의 명분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사법 분야마저 뜻밖에, 그것도 알고 보면 가장 철저히 초중앙집권=반지방분권의 철옹성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6월 19일 <분권포럼>(발제자: 장준동 변호사, 이국운 교수)으로부터 알게 되었다. “모든 법률은 국가 법률이고, 모든 소송은 국가 소송이며, 모든 법원은 국가 법원이고, 모든 검사는 국가 검사이며, 모든 변호사는 국가 변호사이다. 심지어는 법무사, 세무사, 노무사, 관세사 하는 유사법조직역까지 모두가 국가적 직역이다.”라는 이국운 교수의 표현이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여기서 ‘국가’란 당연히 ‘중앙정부’를 말한다). 소위 ‘관습헌법’이라는 논리로 ‘한국의 수도는 영원히 서울’이라는 해괴망측한 헌법조항을 사실상 ‘창설한’ 우리 헌법재판소 판결은 차라리 코미디의 주제로나 어울릴 이야기다.
흔히 제4부라 일컫는 언론들도(물론 언론 시장을 압도적으로 장악한 중앙의 메이저 언론을 말한다) 내심으로 지방화나 분권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의 취재 및 경영구조 전반이 철저히 중앙집권 구조에 맞추어져 있는 마당에 지방분권에 박수쳐서 자신들에게 이로울 리 없기 때문이다. 분권은 그들을 엄청 피곤하게 만들며, 자칫 현재의 과점적 기득권 구조를 지방언론들에게 더 뜯겨야 할 위험마저 있는 것이다. 지방의 부패문제나 독직사례라도 접하면 벌떼처럼 일어나 과분하게(중앙의 부패는 ‘일상적인 일’로 보도하면서, 지방의 부패는 마치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터지고 만 것처럼 호들갑떠는 식으로) 보도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 우리는 그런 사정을 헤아릴 수 있다.
이처럼 입법, 행정, 사법의 3주체는 물론이고, 외곽에서 그들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까지도 중앙집권=분권반대의 맥락에 모두가 한 통속으로 엮여있는 것이 한국의 구조적 현실이다. 바로 이들이 모두 지금의 중앙집권을 지키고 지방분권을 반대하는 연합군 사령부 노릇을 수행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들이 의식하든 못하든 그러한 구조 속에서 그들은 자라왔고, 그 구조는 역대 군사 독재정권들이 대를 이어가며 만들어 온 작품이다.
위와 같은 중앙집권주의 세력들이 지방분권을 반대할 때 반드시 부르짖는 논리적 무기가 있다.지방의 재정자립이 문제이다;지방 소통령과 토호들의 전횡이 걱정이다. (그러니 분권은 그만두고 국가=중앙정부가 계속 보호하고 통제해야 하지 않겠니?)-과연 이 말이 맞을까? 이 말보다 더 나은 대안은 정말 없을까? 다음 주에 계속 논의하기로 한다.
지방분권은 누가 반대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