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느끼는 슬픈 유권자들
[박두웅 언론인]과연 우리들은 이번 지방선거를 훌륭히 치러내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한층 더 뿌리내리는 초석을 다질 수 있을까? 이번 선거를 취재하면서 이런 고민에 빠진다.
지방선거란 우리 지역의 일꾼을 시민 스스로 뽑는다는 실천적 의미를 담고 있다. 지방선거를 '풀뿌리 민주주의'라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중차대한 지방선거를 대하는 시민의 태도는 어떠한가? 아니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하는지 말하고 싶다.
새벽부터 출마자들은 여행을 떠나는 각종 모임을 찾아 분주하다. 얼굴을 알리기 위해 거리청소에도 나선다. 길거리 인사에서부터 경로당을 찾아 지역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리고 작은 모임이라도 놓칠세라 정보수집에 열심이다.
대다수 출마자들은 새벽부터 강행군에 오후가 되면 파김치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마른 수건를 쥐어짜듯이 또 오후 일정에 나선다. 쉴틈이 없다. 왠만한 체력으로는 이겨내기 어려운 강행군이다. 하지만 몸이 고단함은 마음의 상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공손히 내민 명함은 몇 발자국도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 내팽겨쳐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가 아니면 냉랭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다수 후보가 겪는 마음의 상처다.
여기서 유권자가 좋아하는 후보란 누구일까?
혈연이나 지연, 더 나아가 학연까지 후보자와 연결된 끈이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특정 정당의 후보자라는 이유만으로, 소소하게는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 본 후보자에게 마음이 쏠린다. 대다수 현장에서 눈에 보이는 유권자들은 출마자의 전문성, 도덕성, 정책 공약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별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아마도 선거가 끝난 후 행정이나 의정활동이 연고주의에 휘둘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니 시민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실천 가능한 정책은 무엇인지 연구하고 고심하던 출마자조차 막상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의 반응을 보면서 좌절하고 만다. 더 이상 정책의제 개발은 무의미한 일이고,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은 거짓임을 깨닫는다. 출마자들이 겪는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는 가장 큰 이유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일 뿐”이라며 연봉이 얼마니, 이권은 얼마나 큰지 마치 자신의 몫을 빼앗기는 듯이 거침없이 쏟아내는 말들. 출마자의 공약 한 번 들여다 본 적도 없으면서 마치 그의 모든 것을 다 해부해서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무책임한 말들.
유권자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이라고 한다. 지역사회를 망치는 것도 발전시키는 것도 모두 유권자의 몫이다. 시민들은 선거에 투표자로서 참여한다. 완장을 찬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의무가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실천이 없다면 우리가 그토록 소망하는 '유권자가 주인되고 대접받는 살아 숨쉬는 민주주의'는 요원할 것이다.
다시 한번 이번 지방선거를 즈음하여 우리의 현 자세는 어떤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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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현장에서 느끼는 슬픈 유권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