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계율을 지키는 수행자에게 찾아오는 기진맥진(氣盡脈盡)의 탈진(脫盡)의 병이 있다. 수행자로서 탈진의 병이 한반도 찾아오지 않았다면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다.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탈진의 병이 심하면 온몸에 식은 땀과 허열(虛熱)속에 죽는 수가 있다. 마치 자동차의 밧데리가 방전(放電)이 되면 시동(始動)을 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나는 70이 넘은 현재까지 세 번의 심한 탈진상태를 체험했다.
내가 처음 탈진의 병이 최초로 찾아온 적은 1968년도 해인사 강원에서 불경공부를 하던 때였다. 당시 해인사는 사찰경제가 어려워 대중스님들은 선원과 강원 등 모두 영양실조 증세가 많았다. 내가 처음 해인사에 방부를 드렸을 때, 해인사주지는 영암스님(박기종)이었다.
이 분은 김치 담을 때, 소금을 더 넣으라고 독촉하다가 자신이 직접 소금을 김치담는 곳에 몽땅 넣어 버리는 분이었다. 대중스님들은 묵묵히 소금같은 김치 한 잎으로 밥을 먹어야 했다. 따라서 해인사 대중스님들은 탈진이 유행이다.
훗날, 탈진에 고통받던 해인사 선원에서 선수행을 하던 선원의 젊은 스님들이 곡괭이로 해인선원의 방구들을 파 헤쳐 분노를 표현하였다. 한국불교사에 전무후무한 사건이 “해인선원의 방구들 파헤치는 사건”이었다.
당시 세상의 언론은 해인선원의 선방을 파헤친 사건을 조롱하였지만, 탈진에 고통받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독자 여러분, 상상해보시라. 당시 탈진에 고통받던 해인선원의 젊은 스님들이 저항과 분노의 표시로 곡괭이로 선원의 방구들을 파헤치는 모습을….
당시 해인사 강원에 입학을 하려면 1년동안 노력봉사를 해야만 강원 입방(入房)의 자격이 주어졌다.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에는 대부분 재목감인 큰 소나무가 많았다. 그 소나무가 많은 가야산(伽倻山)을 주야로 지키는 산감(山監) 노릇을 하던지, 아니면 해인사 공양간에서 국을 전담하는 소임자인 갱두(羹頭) 노릇을 하거나 밥을 짓는 공양주 노릇 등을 해 마쳐야만 해인사 강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나는 해인사 입구 쪽 있는 구원리 길 옆 산감소(山監所)에 3인 1조로 배속되어 주야로 가야산을 지키는 소임을 받았다. 낮에는 천자문의 한문을 익히고, 밤에는 산감으로 뛰는 것이다.
나는 해인사 강원에서 불경을 배우기 위해 어쩔수 없이 산감 노릇을 했지만, 가난한 가야면 면민들이 가야산에서 화목용 나무를 하려 할 때,-대자대비는 실종되고 -강제로 나무를 못하게 하는 것에 가슴속에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당시 가난한 면민들은 가야산이 아니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화목용 나무를 구할 수가 없었다. 나무를 하다 적발되는 남녀들이 적발되면 나는 애써 모른체 하였다. 함께 근무하는 도반(道伴)들을 설득하여 모른체 하기가 다반사(茶飯事)였다. “큰 소나무는 베어서는 안됩니다.”가 나의 으름장이었다.
해인사 강원은 오전에 불경을 배우면 오후에는 수 십명이 큰 방에 모여 각기 작은 책상앞에 앉아 책상 위에 오전에 배운 불경을 펼쳐놓고 몸을 작게 흔들며 소리내어 불경을 반복해 읽고 그 뜻을 가슴에 새겼다.
따라서 강원생들이 일제히 불경을 읽을 때면 마치 여름날 연못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소리 같았다. 그러나 소리내어 불경을 읽어야 하는 공부 방법에는 맹점이 있었다. 큰소리로 불경을 반복해 읽다보면 마치 자동차의 전기가 방전 되듯이 원기(元氣)가 급속도로 소모되는 병폐가 있었던 것이다. 나를 비롯해 많은 승려들이 기력보충의 먹는 것도 없이 매일 소리쳐 불경을 읽어 탈진상태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독자의 재미를 돋우기 위한 삽화단락(揷話段落)이다.
그 해 초여름 어느 날, 각기 책상 위에 불경을 소리 내어 읽던 나를 포함한 학인들에게 일제히 해인사 마당쪽의 방문을 닫아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유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인 여고생 박근혜가 해인사 큰 법당 쪽의 마당을 거쳐 큰 법당 쪽으로 관람을 하니 모두 문을 닫으라는 명령이었다. 대부분 학인들은 투덜거리며 문을 닫았다. 나는 문 틈으로 박근혜를 찾았으나, 일군(一群)의 여고생들의 가운데 에워싸여 들어오는 똑같은 여고생 옷 차림의 박근혜를 도저히 식별할 수눈 없었다. 세월이 무심히 많이도 흘렀다. 그날의 여고생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대통령직을 노리는 숙적(宿敵)같은 자들에 의해 이제 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린다니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인 것같다.
불경 공부를 하는 당시 우리들에게 창아오는 탈진의 병은 무서운 병이었다. 나를 포함한 42명이 함께 1학년 과정으로 입학을 하였는데, 2년째가 되니 탈진의 병이 돌기 시작하였다. 요령좋은 지, 아니면 천부적인 기력을 타고 났는지, 42명 가운데 탈진이 없고 혈색이 좋은 도반들은 있었다.
탈진에 고통을 받다가 도반들이 하나 둘 공부를 접고 탈진으로 비틀거리며 해인사를 떠나갔다. 나는 악착같이 버티어 불경공부를 마쳐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해인사 큰 법당 부처님께 서원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도 탈진은 찾아왔다. 소리가 목안에서 나오지 않아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저히 불경을 읽을 수가 없고, 어지러워 걸을 수가 없었다. 이 무렵 나는 사특한 꾀를 내었다.
나는 오공(午供)을 마친 후 남비 하나를 구해 들고 해인사 뒤산 계곡에 들어갔다. 맑은 계곡수 속에 작은 바위를 들어내니 제법 큼직한 가재가 있었다. 나는 가재들을 잡아 냄비에 담았다. 가재탕을 해먹으면 탈진의 병이 사라지고 공부를 할 수 있을 것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정신없이 가재를 잡고 있을 때, “무엇하시오?”하는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인사 선원에서 선수행을 하는 B스님이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사죄하고 가재를 물속에 놓아 주었다. “계행을 지키지 않으면서 불경공부를 해서 무엇하겠소?” B스님은 나에게 호되게 면박을 주었다. 그는 나의 간절한 참회를 받아 주지 않고, 당시 해인사 주지 지월(指月)스님에 고변하듯 하고 말았다. “당장 해인사에서 내쫓아야 합니다.”였다.
나는 지월스님에게 불려가 무릅꿇고 가재를 잡은 속사정을 실토하였다. 지월스님은 껄껄 웃었다. “진짜 수행자는 탈진을 체험해야지. 나도 여러 번 겪었다네. 그렇다고 자네같이 가재를 잡아서 먹으려면 안되지. 자네를 당장 내쫓으라고 하지만, 나는 자네의 불심을 믿는다네. 오늘 밤부터 큰 법당 부처님 앞에서 참회의 뜻에서 3천배를 하게. 부처님이 내려보시는 곳에서 거짓 삼천배를 하지 않겠지?”
나는 지옥 속에서 지장보살을 만난 기분이었다. 탈진에 가재잡아 먹으려다 미수에 그친 나의 잘못 때문에 전국 사찰에 소문이 퍼진다면 어찌 되었을까. 나는 탈진의 어지러움속에 해인사 부처님 전에 3천배를 하게 되었다. 비틀거리며 불전 3천배를 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 데, 어언 수십년이 흘러 버렸다. 독자들은 상상해보시라. 해인사 “대적광전 부처님전에 밤새워 비틀거리며 3천배를 하는 나의 모습을….“
나에게 “계율을 지키지 않는 불경공부는 소용없다” 호통을 치고 무자비하게 “해인사에서 나를 내쫓아야 한다”고 해인사 주지에게 강력히 주장을 하던 B승려는 언행일치의 수도승으로 휼륭한 생을 마감했을까? 그에게는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 주막집의 과부와 이층(二層)의 인연을 맺어 수도승 생활을 접고, 그 아내와 함께 돈을 화두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후일담(後日譚)이다.
당시 초발심(初發心)으로 시작한 42명의 해인강원 입학생은 무상한 세월속에 죽거나, 환속하거나, 또는 결혼할 수 있는 타종단 승려로 변해갔다. 아직까지도 결혼하지 않은 조계종 승적을 갖고 늙어가는 숫자는 나를 비롯하여 3∼4명이다. 오래지 않아 나도 죽어 사라지고 무(無)요, 공(空)이 되고 말것이다.
해인사에서 있었던 탈진으로 인한 미수에 그친 “가재탕과 불전 3천배”의 사연은 이상과 같다. 내가 확실히 깨달은 것은 첫째, 깨달았거나 못깨달았거나 “운명의 시간이 되면 죽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다. 둘째, 육신을 가진 인간은 영양섭취를 하지 않고 계속 난행고행(難行苦行)의 공부만 진력하면 죽을 수 있는 기진맥진의 탈진의 병이 찾아오는 것이다 진짜 수행자는 영양만점의 혈색이 좋을 리 없다.
| 
가재탕(湯)과 불전(佛前) 삼천배(三千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