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보다 젊었을 때, 면벽화두나 바위신앙보다는 걸망을 매고 홀로 한국 전국의 명산에 올라 산정상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우러르면서 기도하고 명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밤 하늘을 우러르며 수행하던 부처님의 수행방법을 따라 한 것이다. 이 글을 일는 독자 가운데 명산의 정상에서 홀로 밤하늘의 별을 우러르며 기도하고 명상하는 분이 있기를 희망해본다.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산에 오르면서 수다하게 목격되는 것은 어두운 밤, 큰 바위, 작은 바위 밑에 무속인과 신도들은 돼지 대가리 돼지 입에 고액권 지폐를 물리고 제물상의 양쪽에 촛불을 밝히고, 징과 장고를 치면서 소원의 굿을 하는 데, 신비스럽게 보였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치악산, 북한산 등 도처의 명산의 바위밑에서 소원의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였다.
명산 바위 앞에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무속인들만이 아니었다. 바위가 있는 곳에 사찰을 세우고 “이곳에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이룰 수 있다!”고 기도응답의 영험을 선전하며 기도의 목탁을 치는 승려들도 있었다. 높은 산 바위가 병풍처럼 위요(圍繞)한 사찰과 암자는 유명한 기도장이었다. 미래에 오신다는 구세주 미릇부처님도 유난히 바위에 새긴 바위 부처님이다.
또, 바위가 있는 곳에 기독교의 기도원을 세우고 바위를 향해 소리쳐 “통성기도”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예수님이 응답한다는 영험의 기도장에는 “말 못하는 개가 들어오면 개도 방언을 한다”는 선전이 있었다. 예컨대 북악산에 큰 바위, 작은 바위가 있는 곳에 어두운 밤이 되면 무속인, 승려,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인들 등이 소리쳐 간절한 소원의 기도를 하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치악산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에 두 군데의 큰 굿당을 보았다. 어느 굿당은 큰 컨테이너들을 서너개 배치하고 각 컨테이너에는 독립된 굿당으로 모두 징과 장구를 치면서 소원을 비는 굿을 하고 있었다. 굿당의 주차장에는 고급 자가용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고급 외제차도 끼어 있었다. 소원의 굿을 하는 신도들의 차였다. 굿당의 주변에는 굿당에서 버리는 떡과 돼지 고기를 잘 먹어 살이 올라 비대해진 뚱보 쥐들이 뒤뚱거리며 굿을 하는 인간들을 흘겨 보듯 했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회교 등 종교가 등장하지 않았을 때, 지구촌의 인간들은 무엇을 의지하고 기도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자연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해와 달, 별(북두칠성 등), 큰 산, 바다, 강, 바위 등이었다. 지구가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불덩이 일때, 지구의 열을 식히기 위해 하늘은 거의 매일 폭우를 내려 열을 식혔다. 하늘에서는 폭우속에 연일 천둥 번개가 있었다. 당시 인간들은 하늘이 주는 폭우와 천둥 번개에 공포에 빠졌다. 공포에 빠진 인간들은 형상이 없는 전지전능한 하늘의 신을 향해 목숨을 애걸하는 기도를 하며 살았다. 그 기도를 하던 DNA가 대를 거듭하는 인간의 가슴에 전해왔다. 따라서 아직도 부지기수의 남녀들은 원초적 샤머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의 몫이 아니었다. 예컨대 내가 아는 어느 대학교의 미모의 국문학 여교수는 나에게 자랑하듯 고백했다. 해마다 “봄 가을에 단골 무속인과 함께 명산의 큰 바위 밑에서 5백 5십만원짜리 굿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굿을 하지 않으면 병원의 의사가 알 수 없이 몸이 아파오고, “꿈에 신이 나타나 꾸짖는 무서운 악몽으로 고통을 받는다. 굿을 해 마치면 신기하게 아픈 몸이 낫고, 악몽이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무속인에게 굿을 하는 것은 절대 미신(迷信)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불교를 믿는다는 그 교수는 나에게 천원 한 장 보시하지 않으면서 굿비는 해마다 1천1백만원을 준비하여 굿을 해야하는 굿 중독자같았다. 그녀는 “미신에 빠졌으니 무속인이 되라!“는 남편의 권유를 받고 이혼 당한 후 돈만 생기면 바위를 찾아 굿하는 재미로 인생을 살고 있다.
큰 바위 밑에서 큰 굿을 하는 외제 자가용차를 타고 다니는 서울의 강남에 사는 모 부인에게 나는 진지하게 “무슨 소원이 있어 굿을 하시오?”라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김정은이 한국에 전쟁을 일으키지 말아 달라는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감격하여 이렇게 찬사했다. “애국의 기도를 하는 분”이라고 연속하여 찬사했다. 그러나 그녀는 정색하여 이렇게 반전(反轉)같은 말을 해주었다.
애국은 무슨 애국입니까? 땅과 건물을 많이 사두어 값이 오르기를 고대하고 있는데, 빌어먹을 김정은이 북핵이라도 발사하면 저는 망하지 않겠습니까? 손놓고 망하지 않으려면 영험있다는 명산에서 기도라도 해야 하지 않아요?” 나는 그녀가 애국의 굿을 한다는 찬사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자책했다.
명산을 찾아 다니며 구렁이를 잡아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삼는 소위 땅꾼처사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명산의 구렁이는 어디서 잡을 수 있는지 아세요?“ 그의 말인즉 ”구렁이들은 큰 바위 작은 바위를 인간의 아파트 같이 여기고 숨어 있지요”라고 말해주었다. 따라서 큰 바위 작은 바위밑에서 낮이나 밤이나 징, 장고를 치면서 소란스럽게 굿을 할 때면, 바위속에 은거해 있는 구렁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냉소할까? 좋아할까? 시끄럽다, 짜증을 낼까?
바위신앙을 좋아하는 신앙자의 주장은, 우주의 신비한 기운(氣運)이 바위에 내려 바위는 신비한 기운을 머금고 있고, 그 바위앞에 기도하면 바위속의 신비한 기운이 인간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주장이다. 태조 이성계도 남해 보리암의 기암앞에 기도를 해서 이조를 건국했다는 설이 전해오지만, 진위(眞僞)여부에 대해서 아직 나는 판정할 깨달음은 없다고 고백한다.
일부 한국인들은 재수대통, 무병장수 등의 소원을 위해 매일 밤, 전국의 명산의 바위 밑에 촛불을 밝히고 돼지 대가리를 놓고 소원성취를 바라는 기도를 해온다.
한국의 천주교를 믿는 전직 대통령의 영부인은 밤이면 호젓한 한강가에서 무속인이 징을 요란게 치며 축문을 외우면, 영부인은 흐르는 강물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소원성취를 바라는 기도를 했다는 무속인의 증언이 있다. 무속인의 주장인즉 ‘큰 바위 밑에 기도하여 소원을 이루는 시대는 끝났다’는 주장이었다. 말세에는 “한강을 관장하는 용신(龍神)에게 기도해야 소원성취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에 영부인이 감동하여 야음을 타고 한강가에서 기도를 했다는 것이었다. 영부인이 무슨 비밀의 소원을 이루려고 한강의 용신에게 기도정성을 드렸을까? 무심히 흐르는 한강 어디에 용신이 잠복해 위엄을 갖추고 신통력을 보인다는 것인가?
한국의 명산 근사한 바위나 강가나 바다가에는 무당적 승려, 무당적 신부, 무당적 목사, 진짜 무속인이 각각 신도들을 데리고 북어, 돼지 대가리, 먹걸리 병 등을 준비하고, 주문(呪文)같은 것을 외우면 고액권의 지폐가 가을 낙엽같이 쌓인다. 바꿔말해 가슴에 허욕이 있는 남녀, 원초적 불안공포에 사로잡힌 남녀는 밤이면 명산의 큰 바위 밑이나 바다가, 강가에서 영험한 신의 가호를 바라는 기도를 한다는 항설이다. 빈곤자들에 자비를 실천하지 않고 욕망의 기도만 하는 것이다. “명산과 바다, 강가는 무당적 종교인들의 특별 영업장이 된 것같다”는 항설이다.
지구는 총알같은 속도로 태양을 중심하여 윤회하는 작은 행성(行星)이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 항성(恒星)이다. 태양은 만고광명의 불덩어리로 존재한다. 태양은 누가 창조했을까? 온 우주는? 태양은 왜 지구에 다뜻한 열과 광명을 무료로 주고 있을까? 또 밤하늘의 항하사 (恒河沙) 모래수와 같은 별의 세계는 누가 만들었을까? 지구의 인간은 왜 생노병사를 반복하는 것인가?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는 지금보다 젊었을 때, 면벽화두나 바위신앙보다는 걸망을 매고 홀로 한국 전국의 명산에 올라 산 정상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우러르면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했다.
부처님의 수행법을 따라한 것이다. 부처님은 6년 고행 끝에 보리수 나무아래 정좌하여 밤하늘의 별들을 우러르다가 마침내 새벽하늘에 빛나는 명성(明星)을 보고 우주의 진리를 깨달았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세상 모든 법은 인연에 따라 생(諸法從緣生)하고, 모든 법은 인연따라 멸(諸法從緣滅)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들은 명산의 바위에 재수대통과 수명장수의 기도도 좋지만, 스스로 세상에 살면서 악연 맺기 보더눈 선연(善緣)을 스스로 만들고, 선연을 만나기를 기도하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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