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시사해주는 주목할 만한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지난 7일 뉴욕에서 열린 ‘위폐’ 관련 미·북 접촉에서 북한은 대북 금융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며 제재 해제를 미국에 강력 요청하는 한편, 유화 제스처로서 위폐 문제 조사를 위한 ‘합동 태스크팀’을 구성하자고 제의했으나, 미국은 이를 즉각 거부했다.
미국은 뉴욕 접촉의 목적이 북한과의 협상’이 아닌, 위폐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브리핑’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그 업무도 국무부가 아닌 재무부가 다루도록 했다. 정치적 타결이 아닌, 사법적 방법으로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뉴욕 타임즈지는 이를 미국의 대북 “징벌조치”라 묘사하면서, 추가적 법집행 조치가 뒤따를 것을 예상했다.
미국과의 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자, 북한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때에 맞추어 미사일 실험 발사가 있었고, 3월말 예정인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구실로 남북장관급회담을 연기시켰으며, 선제공격 가능”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위폐 사건이 주는 함의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두 가지 점에서 큰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대북 ‘돈줄 죄기’의 결과 북한 체제의 취약성을 발견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딜레마에 놓여있던 대북정책에 있어 무엇인가 효율적인 대안을 찾아냈다는 자신감이다.
이 변화는 지난 16일 백악관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서 논리적 근거를 갖추고 재천명되었다. 곧 核무장하는 이란을 “테러의 동맹국”이자 자유의 적”으로 지칭하고, 단일국가로서는 최대의 위협국가로 규정하면서, 북한을 前과 변함없이 “폭정 체제”로 자리매김 했다. 아울러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한 경우 ‘선제공격’의 권리를 美 안보정책의 ‘중심적 기조’로 재확인했다. NSS는 또 위폐 등 불법 활동과 인권문제 등을 들어, 북한이 먼저 정치체제를 개혁하고 주민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을 경우, ‘폭정’이 용인될 수 없음을 선언했다. 이는 북한이 먼저 변화하지 않는 한, 북한 정권의 교체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이러한 정세 흐름 속에서 북핵 6자회담은 퇴색되어가는 모습이다. 교착과 결렬을 반복하는 6자회담 틀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겠다는 의견이 美지도층 내에 확산되고 있다.
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새롭게 변화하는 주변정세에 발맞추어 유연성 있게 수립·집행되어야 한다. 한반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시점에, 화석처럼 굳어진 논리로 머물러 있으면 돌아오는 것은 국가이익의 결정적 훼손뿐이다. 북한 체제는 존립의 정당성이나 통치의 실효성 측면에서 그 의의를 모두 상실하고 있다. 이는 핵·인권·범죄행위 등 도덕적 불의(不義)와 먹는 것조차 해결 못하는 통치의 무능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조적으로 볼 때,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한, 체제 붕괴는 역사의 피할 수 없는 대세인 듯싶다.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바로 이러한 냉철한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표현은 절제하고 있으나, 멀리는 정권 또는 체제 교체(regime change)까지 내다보는 모습이다. 우리도 현실인식과 대응책 마련에서 뒤처져서는 안 된다. 정부는 남북 ‘평화체제 수립’에 집착하고 있으나, 예상외의 발생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국민들에게도 정세 변화를 알리고, 적절한 공론화에 들어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급격한 유사상황에 대비하여, 동맹국인 미국과 공조하여 대책 마련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민족의 진정한 자유와 안보, 통일을 확보하며,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美, 北의 정권교체 까지 내다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