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문명의 암흑기 중세 유럽 사회에서 면죄부가 팔렸다. 신에 대하여 죄를 범한 사람들의 벌을 면제한다는 명목으로, 로마교황청이 신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면죄부를 발행하였다. 로마교회에서는 원래부터 헌금을 받고 죄를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를 대사(大赦)라고 한다. 죄를 완전히 참회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결심으로 고백할 때, 죄를 용서받는다고 가르치면서도 죄의 벌은 남게 되므로 그것을 기도나 선업(善業)으로써 갚을 것을 권했다.
중세 유럽의 문명사를 100년 정도 후퇴시킨 십자군전쟁이 시작되면서 면죄부 판매는 크게 증가하였다. 1095년 시작되었던 십자군 전쟁은 1456년까지 약361년 동안 계속된 전쟁에서 전쟁 비용 마련이 큰 문제였다. 십자군전쟁이 발발 되자 세입을 늘리기 위해 면죄부 판매가 적극 활용되면서 ‘헌금자는 면죄된다’고 하는 미신이 더욱 크게 세력을 떨쳤다. 1476년 교황 식스토 4세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면죄부까지 만들었는데, 이렇게 세입의 부족을 면죄부의 판매로써 보충하려는 악습은 더욱 심화되어, 레오 10세는 재정 보충을 위하여 대규모적인 판매를 개시하였다. 독일에서는 마인츠의 대주교 알브레히트가 면죄부 판매를 담당하여 도미니크회(會)의 수도사 J. 테첼을 시켜서 팔게 했다.
면죄부를 팔아 연명했던 중세사회는 신과 연관된 종교의 세계와 인간성을 붕괴시켰다. 인간의 교묘함을 금력과 권력으로 보호하려 했던 중세사회는 수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살게 하였고, 결국 인류 역사를 뒤흔들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그의 아들인 정의선 사장의 재판을 담당한 이재홍 부장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착잡하다”고 운을 뗐고, “어떤 판결을 내려도 반대쪽 의견을 가진 이들로부터 비판이 예상되기 때문”이라며 “솔직히 재판부 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장시간 토론을 했다”고 말했다.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이들의 논지를 소개하며 재벌의 부도덕한 경영 관행을 거론했다. 이어 반대로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며 집행유예를 지지하는 주장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부장판사는 ‘집행유예 더하기 사회봉사명령’이 “제3의 길”이라고 표현했다. 양측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는 가운데 법과 현실을 조화시키기 위한 대안이라는 뜻이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민이 깊었음도 내비쳤다. “동료•후배 판사들, 검사, 변호사, 언론인, 경제인, 택시기사, 음식점 종업원 등 다양한 직역에 있는 이들에게 의견을 구했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재벌 봐주기’라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듯 선고 말미에 “법원이 재벌에 관대하다는 비판을 잘 알고 있고, 그 점도 감안했다”며 “하지만 재판 결과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비판이 있다면 달게 받겠다”고 덧붙였다.
법과 정의의 심판자는 대가 없이 죄를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하기 보다는 범죄자의 사회적 역할과 공과를 들어 사회 강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물산 등 5개 삼성그룹 계열사가 2000년 7조2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또 중앙일보 계열분리는 이건희 회장이 홍석현 회장 등에게 명의신탁만 한 것으로, 위장 계열분리라고 주장했다.
삼성 비리의혹 특별수사 감찰본부(박한철 본부장)는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김인주 삼성 전략기획실 사장 등 삼성그룹 임직원 8~9명에 대해 출국 금지했다. 박한철 본부장은 “수사외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겠다”며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다.
김변호사는 또 “1999년 김인주 사장의 부탁으로 ‘중앙일보 주주명의자는 홍석현 회장으로 하되 홍회장은 의결권이 없고 이건희 회장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의 비밀계약서를 내가 직접 썼다”고 털어놓았다.
김변호사는 삼성물산이 94~97년에 해외 지점과의 거래에서 2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그룹 임직원 명의로 이건희 일가 자산을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또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김앤장법률사무소가 허위사실 조작에 적극 가담했으며, 삼성자동차의 분식회계 내용이 담긴 법정관리 기록을 불법으로 빼내 소각 폐기했다고도 했다. 김변호사는 삼성이 정치인, 언론인, 공무원뿐 아니라 시민단체 인사도 관리를 시도했다고 주장하고 ‘참여연대, 법조인 네트워크 현황’이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삼성그룹은 이에 대해 “ ‘명의신탁 방식의 계약서가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고, 고가 미술품 구입 리스트는 서미갤러리 서류로, ‘베들레헴 병원’과 ‘행복한 눈물’도 사지 않았다”며 “모든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김앤장법률사무소와 삼일회계법인도 각각 “정상적인 변호만 했다” “근거가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준엄한 법의 심판이 기대되는 재판이 또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언론에 폭로되면 양 당사자의 범죄 사실에 대한 주장이 항상 극단적으로 상반된다. 지금까지 몇몇 재판의 판례를 볼 때, 무혐의 처리도 되고 근거 있는 명분을 들어 죄를 면하기도 한다. 모두 능력이다. 자조 섞인 푸념이나 하는 서민은 상상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금력 또는 권력을 엄청나게 가진 극히 일부 능력집단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대한민국 사회의 면죄부를 산 사람들의 이야기다.
기본 법질서가 무너지고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며 면죄부를 산 사람들이 판을 치는 사회는 붕괴한다. 인명을 경시하고 약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는 역사를 뒤흔든다. 죄를 짓고도 자랑이 되는 사회, 인간의 교묘함이 보호되는 사회, 천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는 수 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 몰아 넣고 인류의 행복을 파괴한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도 극단적으로 상반된 주장이 난무한다. 어느 한 쪽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사건이기에 논란은 사회를 뒤흔들며 결론도 쉽게 나지 않는다. 설사 결론이 나더라도 논란은 여전히 남는다. 돈 없고 힘 없는 서민은 그 정치인들의 논란이 왜 그런지 알고 있다. 하지만, 면죄부를 살 수 없는 서민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법 앞에 불평등한 서민은 그들의 성공을 내 문제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발전한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서민이 다수이기에 가능하다. 법을 존중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서민들이 세계 속에 그 이름을 빛내고 있기에 가능하다. 면죄부를 사지 않아도 서민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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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 파는 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