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은 14일 신문지상을 통해 알고 계시겠지만 요즘 노무현 정권이 집권 이래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집권 이래 경제성장률이 연속 2년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낮더니 최근에는 정부경제부처 책임자의 입에서 일본식 장기 침체의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부동산정책을 비롯한 핵심 민생정책이 실패하고 전국이 투기장화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서민을 위한다는 부동산정책은 오히려 집값만 폭등시켜 부자들만 살고 서민들은 더 죽어나게 생겼다고 난리다.
유전게이트, 행담도 게이트 등 소위 대통령 측근들에 의해 저질러진 부적절한 처신과 각종 탈법, 불법의혹들로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고, 이 정권 역시 과거 부패한 정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북핵문제 역시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망동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국내용 레토릭(rhetoric)으로만 일관하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주창하던 ‘균형자론’은 그 현실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안팎에서 일어나자 소리 없이 없어졌다.
그러나 제가 노무현 정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하는 근거는 앞서 말씀드린 표피적인 현상이나 정책실패 사례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많은 국정혼란이나 실정, 권력실세들의 부적절한 행위들을 바라보고 있는 권력핵심들의 시각이 바로 위기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정혼란에 대한 여론의 문제제기가 일어나자 정권의 핵심들은 바로 책임 떠넘기기와 핑계거리를 만들어 내기에 바빴습니다. 때 아닌 조선시대 사림파와 훈구파 논란이 일어났다.
법적 권능이 없는 대통령자문위원회의 월권에 따른 국정혼란과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자 문제점을 고치려하기보다는 위원회가 희망이다 라며 국민을 향해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혼선을 정리하고 해결방향을 제시해야 할 대통령은 국정혼란에 대해 아무런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무총리는 위기가 아니며 생각만큼 심각하지도 않다고 강변하고 있다. 부수적인 이야기이지만 이 정권의 고위공직자들은 왜 현충일에 골프를 자제해야 하는지 모르고, 산불로 강원도 전역이 불타고 주민들의 피땀 어린 재산이 재로 변해도 약속 된 골프는 쳐야 하는 사람들 이다.
집권여당은 정부가 못하면 중심을 잡고 국민을 안심시키며 해법을 제시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런 여당이 지금 심각한 내분에 빠져있다. 여러분들께서는 신문의 정치면을 얼마나 보시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여의도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이자 단연화두는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여권의 내분이다.
지난해 탄핵의 역풍으로 과반수를 넘기는 1당을 차지했던 여당이 1년이 지난 지금 지도부는 심각한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고 의원들은 각각의 정파와 이해로 묶여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민생은 고단한데 정계개편이야기가 거침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의 집권여당은 과거의 정치세력과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보십니까.
위기를 위기라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당국자들의 오만과 독선, 반성하지 않으며 서로 반목하고 싸우는 집권여당, 이것이야말로 노무현 정권의 위기가 심각한 것이며 총체적이고 중층적인 위기구조에 빠져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국정운영의 책임세력의 행태가 이 모양이니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경제인들 잘 풀리고 외국의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겠습니까.
불과 1년 전만 해도 집권세력은 탄핵의 역풍 덕분에 과반수를 넘는 제1당을 이루었습니다. 2002년 대선승리로 행정부 권력을 장악하고 2004년 의회권력을 장악했으며 이제 2006년 지방선거에서만 승리하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라며 의욕에 불타오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지금 노무현 정권의 위기는 한마디로 국가경영 주체세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 즉 국민신뢰의 상실에서 오는 신뢰의 위기이며, 그것은 (리더십의 부족) (비전의 결여) (시스템의 무시) 등 3대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현 집권세력은 국가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노무현 정권을 혹평하는 사람들은 노 정권은 아마추어 정권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마추어라는 것은 프로에 대비되는 말로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자격은 어느 정도 가진 것인데, 노무현 정권은 그런 자격조차 없다는 것이다.
리더십(leadership)의 부족
한나라당은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다 이긴 선거를 지고는 “노무현 후보에게 진 것이 아니라 시대흐름에 졌다”는 분석과 자책이 있었습니다. 21세기 새로운 흐름과 국민과 시대의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김대중 정권의 부정부패라는 과거지향성 현실에만 안주하다가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노무현대통령과 그 핵심세력들의 행태를 지난 2년간 지켜본 바에 따르면 2002년 그들은 새로움을 이야기해서 선거에는 이겼지만 새로운 시대흐름을 제대로 읽고 준비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노무현 정권의 국정운영 행태는 소위 코드주의 라고 하는 철저한 배타성과 독선, 미래를 개척하기 보다는 보복성 ‘과거 파내기에 대한 집착 통합보다는 국민을 적과 동지로 갈라 치는 이분법적 사고 등으로 특징지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이나 인식과는 매우 거리가 먼 것이다.
오늘날 국가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타협과 조정력이며 미래비전의 제시입니다. 또한 설득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통합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민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고 그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나갈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권력핵심들은 오늘날 선진국들이 2만달러 고지를 달성해 가는 과정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분명한 비전에 기초한 강력한 리더십, 정치안정, 선진노사관계, 사회통합 등 정치 사회적 기반구축에 최우선적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것이 성공을 했기에 선진국 도달이 가능했다.
대통령(President)이라는 자리는 그 어원(語源, 최고회의 주재자)에서도 보듯이 결코 군림하거나 통치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자신들의 검증 안 된 신념이나 가차만을 고집하고 이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다원성을 인정하고 그 다원성을 조정하여 새로운 공동체에너지를 창출해 내는 것이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과 국정운영 책임세력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 집권세력이 비록 새로움을 내걸고 선거에 이기고 현재 새로움을 강조하고 있지만 결코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사고를 가진 세력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머물고 있는 80년대 사고를 극복하지 못한데서 오는 문제일 것입니다. 산업화의 둘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80년대 민주화를 외친 사람들은 분명 새로운 사람들이지만 2005년 현재 그때의 가치와 사고는 역시 낡은 것일 뿐이다.
그것은 산업화나 민주화의 가치가 소중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나 능력, 리더십 등에서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나서 진정으로 새로움을 인식하고 체화시키지 못하면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21세기 국정운영의 책임세력으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입니다.
비전(vision)의 결여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국가발전의 비전과 목표 그리고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국가나 사회가 제대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이 정권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이 충분한 힘을 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준 권능을 엉뚱한데다 소진하다가 오늘의 사태를 맞았습니다. 지난 총선 이후 정부여당이 보여준 태도를 한번 기억해 봅시다. 그들은 선거 직후에는 상생의 정치 운운하며 야당 대표와 상생의 협약까지 맺는 등 새로운 정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불과 한달도 못되어 야당 대표의 부친행적을 야당대표에게 연결시켜 공격하고, 과거사에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합리적으로 부분개정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폐지로 돌변하여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갔습니다. 신문법과 사립학교법 개정 등 사회적 균열을 가져오는 문제에만 집착했다.
과거사를 조사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과거는 바로 잡아야 하며, 또 계승할 점이 있다면 계승해야 합니다. 문제는 국가경영을 책임진 세력들의 관심사가 오로지 ‘과거사 캐기’ 등 정략적으로 자신들에게 이로운 사안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해 그리고 올해도 집권세력의 관심은 민생경제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어떻게 관철시켜야 할 것인지에 집착하고 있다.
저는 집권세력이 이렇게 과거에 집착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집중하는 이유가 자신들의 반대세력 소위 기득권세력(실질적으로 이제는 자신들이 기득권세력이지만)에 대한 정서적 반감과 무력화(無力化)의 필요성, 집권기반의 강화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비전의 결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나라가 가야 할 비전과 목표가 분명하고 그 추진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 비전달성을 위해 정치권이나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고 사회구성원들을 설득시키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여당이 비전이 없다는 점은 바로 대통령 스스로 선진한국 (나라선진화 작업은 한나라당이 먼저 시작했으며 현재 여의도연구소를 중심으로 구체적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을 이야기하면서 선진한국의 구체적 상(像)과 로드맵(road map), 중장기적 전망 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통령자문위원회가 각종 로드맵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각각의 위원회가 고립?분산적으로 일하며 구체성과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진한국의 상은 파이, 즉 새로운 ‘캐시 카우’(cash cow/기업에 막대한 현금유동성을 제공해주는 사업분야)를 찾아내고 사람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제대로 확신에 차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개혁과 실용의 문제를 갖고 대립하고 있습니다. 개혁은 개혁대로 실용은 실용대로 합리성과 구체성을 가지며 국가나 사회발전을 위해 다 유용한 것인데, 그들의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들과 동류가 아닌 세력에 대한 배태성도 대단하지만 내부에서 정파 간의 배타성도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당이 정치개혁 문제를 갖고 접근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치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역감정 극복을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중대선거구제는 대통령제하에서는 부적절한 제도일 뿐만 아니라 민주적 대표성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지역감정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제도입니다.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배제도 따지고 보면 지금의 불리한 지방정치구도를 깨보자는 수에 다름 아닙니다. 선진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하기위해서는 정치관계법을 종합적으로 어떻게 개정해야 한다든지 하는 정치개혁의 철학과 분명한 목표의식 없이 그때그때마다 자당에 유리한 방법이 생각나면 이를 당의 정책으로 발표하고 야당에게 강요하고 있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과거사 규명이나 국가보안법 폐지는 결코 대한민국의 비전은 아닐 것입니다. 긍정의 비전이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가요. 그것은 반대세력의 입을 다물게 하기위한 정략이며 선거공학적인 관점에서 공격거리나 이슈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 집권세력의 과거사 공세 등 여러 가지 정치적 공세는 자신들만의 가치나 신념에 의해 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경제와 삶의 질 문제를 중심으로 국민에게 자신 있게 제시하고 야당을 리드할 비전이 없기 때문이 더 큰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스템(system)의 무시
노무현 정부가 공식 공무원 조직보다는 대통령 측근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 의존하고 있고 그것이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 신문지상을 통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자문위원회가 자문에 그치지 않고 월권을 하고 실질적인 행정기구화 되면 그것은 곧 국정시스템의 혼란을 가져오고 국정운영의 비효율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적 권능이 없는 조직이 권력의 신임을 내세워 법적 권능을 행사한다면, 그 조직이 잘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위원회에 집착하고 위원회 중심으로 국정을 꾸려가려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관료조직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권은 관료조직을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기득권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처럼 관료(공무원)들을 국정혁신의 주체로 키우고 함께 가기보다는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한다면 그것은 곧 공직사회를 객체화시키게 되고 객체화된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일을 하기란 매우 어렵게 됩니다. 당연히 책임행정이 어렵게 되고 국정수행이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정상적인 조직 즉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은 곧 인치(人治)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그 시스템을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조직이 잘 돌아갈 수 있고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 정권들은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었지만 항상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비공식적인 사설권력들이 국정을 좌지우지 해온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폐단을 낳았고 결국에는 국민들의 호된 질책을 받았습니다. 지금 노무현 정권도 다소 양상은 다르지만 전임 정권들과 본질적인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상으로 리더십, 비전 시스템의 세 가지 문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의 문제가 결국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국정도 잘 안 돌아가게 만드는 것 아닌가, 그리고 결국은 국민들로부터 국가경영능력의 부족이라는 비판과 불신을 초래하고 총체적인 신뢰의 위기로 가는 것 아닌 가 그렇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현재 노무현정권의 위기는 리더십 비전 시스템의 부족과 무시에서 오는 위기로,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매우 중층적이고 구조적 위기라는 데서 심각성이 있습니다.
한국정치의 과제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이 처한 위기, 국정의 위기극복을 위한 한국정치의 과제는 무엇인가? 정권의 위기는 단순 그들만의 위기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위기입니다. 나라가 잘 되도록 하는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국가경영을 책임진 세력들이 제 역할을 못하면 경제든 사회든 제대로 돌아가기란 어려우며 설사 돌아가도 몇 배의 노력과 투입(in put)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따라서 여야 정치권 할 것 없이 정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은 도와주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먼저 盧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국정운영의 철학과 기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국정이 어려우면 면 무엇보다도 널리 인재를 찾아 등용해야 하며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오늘의 국정위기 기저에는 역량도 역량이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핵심들의 배타성과 독선이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
최근 국정원장 인선 문제에서 보듯이, 북핵문제를 전혀 풀어내지 못하는 외교안보팀을 쇄신할 생각은 안하고 눈앞에 보이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려는 식의 인사로는 난국을 돌파하기 어렵습니다. 술에 취해 야당과 언론을 모독하고 국회에서 고압적 자세로 ‘배 째라’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는 국무총리로는 결코 야당의 진정한 협조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능력과 인격을 겸비한 분들이 국가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사회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그 다원성의 조화를 통해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신들만의 신념이나 가치에 집착하면 필연적으로 사회가 갈라지고 대립하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 동화에서 외나무다리에서 두 마리의 염소가 먹이를 어떻게 먹었는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은 기득권을 보호해 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제 합법적이고 사회의 신망을 얻지 못하는 기득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권력이나 법의 힘이 아니더라도 존재할 수 없도록 시민사회의 힘이 그만큼 커졌고 국민의식도 매우 높습니다.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모든 세력이나 행위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인터넷시대에는 그 어떤 예외나 특권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좌우의 양극단을 배제하고 합리적이고 역량이 있다면 그것이 진보든 보수든 아니면 탈(脫)이념이든 가리지 않고 함께 가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구성원들의 역량을 하나로 모을 수 있으며 공동체의 정신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최근 노대통령이 증오와 분노가 아닌 통합을 이야기했는데 정말 그것이 진심이기를 바랍니다. 노무현 정권의 국정쇄신은 사람 한 둘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고와 인식의 근본적 전환이 이루어질 때만이 그 의미를 갖는 것이며 국민들도 다시 한번 지켜보려고 할 것입니다.
둘째 여야(與野)합동으로 국민이 합의하는 국가비전을 만들어야합니다. 여야합동 나라선진화추진회의 를 구성해야 합니다.
선진한국에 대해서는 집권여당과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입장이 같습니다. 그것이 나라가 먹고사는 방향이며 2018년 고령화 사회 진입을 생각한다면 시간도 불과 15년 내외밖에 없다는데도 이견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입니다.
저는 1차적으로 여야가 공동으로 구체적인 선진한국상(像)과 나라선진화추진전략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열고 2차로 그 결과를 바탕으로 與野 합동으로 「나라선진화추진회의」를 만들어서 국가의 미래를 논의해야 합니다. 선진화만 이야기하고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권이 국민이나 경제인들에게 무엇인가 생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실질적인 노력과 성과를 가져와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모두가 긍정적이고 미래중심적으로 사고하고 같이 힘을 모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대한민국의 저력은 되살아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비전이 없으면 국정을 선거공학적 측면에서 운영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공학적 국정운영은 한마디로 준비와 자신감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며 모든 것을 표로만 계산하는 정치를 하려다보니 무리수가 따르고 야당의 반발을 불러오며 국민의 지지도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수도이전입니다. 그들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추진과정을 통해 그 속내를 보면 충청도민을 실상은 충청도 지역주의와 표를 의식한 전형적인 대선기반 구축의 핵심전략이라는 점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무리한 수도분할 이전은 결국 국정의 비효율을 초래하고 막대한 비용의 손실을 초래할 것입니다.
셋째 새로운 국가경영 주체세력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실용적(實用的) 개혁주의(改革主義者)의 연대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국가경영 주체세력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고와 어떤 역량을 가진 사람들 또는 세력(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뀌어 질 수 있습니다. 유능한 CEO가 도산 직전에 빠진 회사를 구하듯 이제 우리는 국가경영세력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대해선 좀 더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컨텐츠보다 오디오와 비디오를 중심으로 한 감성적인 접근으로는 진정으로 책임 있는 지도자나 정치세력을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세계화, 정보화, 분권화로 특징 지워지는 21세기는 실력의 시대’이며‘비전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비전과 전략 없이 입으로만 이야기하는 레토릭 정치는 표피적으로는 그럴 싸 해 보이지만 막상 그런 사람들이 국가를 책임질 경우 매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시대흐름상 분명히 의미 있는 정권입니다. 노무현 정권은 민주화와 정보화 세대가 중심이 되어 탄생시킨 정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이 속한 당에서 조차 소수세력이었고, 그의 전면적인 등장을 예상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으며 도덕적 리더십과 과거보다는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그의 승리를 가져 올수 있었습니다. 민주화 세대 소위 ‘386’을 중심으로 한 기성시대, 기득권세력에 대한 저항 이데올로기와 문화담론, 그리고 새로운 매체를 무기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의 노무현 정권을 바라보면서, 앞서 말씀드렸듯이, 노무현 정권이 보여준 국정운영 태도나 역량은 시대의 흐름과 국민들의 요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대해서는 집요할 정도로 집착하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합니다. 노무현 정권은 개혁을 이야기하지만 그 개혁의 실체를 보면 그것은 지구상에서 사라져 간 이념개혁에 불과하며, 상당 부분은 선거공학적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에 있어 개혁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도 있지만 그것과 함께 새로운 파이를 창출해내는 생산적 개혁이 되어야 하는데 과거 지향적 이념개혁으로는 그 파이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즉 비전이 없으면 제대로 된 개혁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더 비전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기득권세력이라는 오명을 탈피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쇄신’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선진화라는 국가발전의 담론을 선점하였지만 방향성만 제시할 뿐 종합적인 로드맵이나 정책은 아직 제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진정 국민으로부터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정권의 오만과 독주, 부패와 부도덕성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견제하고 싸워나가야 하지만, 민생과 경제를 중심으로 국민의 삶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정파를 초월하여 대안을 제시해야 하며 협조할 것이 있으면 협조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 가슴 속에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한나라당의 주요 당직자의 학력발언을 보면서 당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매우 가슴이 아픕니다. 실력의 시대’에 학력 운운하는 것은 전근대적 사고일 뿐만 아니라 2002년 한나라당을 패배의 나락으로 빠지게 했던 오만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우리사회 엘리트의 천박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만약 한나라당이 지난 4.30보궐선거에서 패배하고 노무현 정권도 별 문제없이 국정을 수행하고 있다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한나라당은 왜 우리 국민이 명문고.명문대를 나온 엘리트가 아닌 실업고등학교 출신 대통령을 선택했는지, 그것도 연속으로 두 번에 걸쳐 선택했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한국의 보수엘리트들은 이러한 국민의 마음과 그리고 가슴 저편에 자리 잡고 있는 오만과 천박성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다면 진정한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맺음말
그렇다면 앞으로 나라를 어떤 지도자, 어떤 사람들에게 맡겨야 하겠습니까. 저는 이념에 집착한 개혁근본주의자들도, 개혁근본주의자들의 실정을 빌미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구세력도 아닌 비전을 갖고 국민과 함께 실용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다음 국정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용적 개혁주의 란 좌우(左右) 양극단을 배제하고, 합리성과 현실성 그리고 이념에 집착하지 않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용적 개혁주의 란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 모두를 포용하는 개념입니다. 그것은 한국적 제3의 길’일 수 있으며, 한국의 진정한 ‘미래세력(frontier)’입니다. 저는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 21세기 국가비전과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란 그렇게 거창하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한국정치의 고질병으로 알려진 몇 개의 근본적 핵심과제를 진정성을 갖고 뜯어고치고 실천하면 되는 것입니다.
첫째, 지역주의 정치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입니다. 지역주의 정치를 조장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에 대한 완전하고도 영원한 퇴출 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 당리당략 정치를 청산해야 합니다. 당리당략에 의한 정치는 필연적으로 권모술수를 앞세우게 되고 당연히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셋째, 대안정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 반대를 위한 반대로는 결코 생산적인 정치를 구현할 수 없습니다. 대안을 놓고 정책 경쟁을 하는 정치가 생산적인 정치이며 상생의 정치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이란 실용적 개혁주의정치를 의미하며 이러한 정치는 당연히 실용적 개혁마인드를 갖고 있는 실용적 개혁주의자들의 강고한 연대와 집권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이 그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저 자신을 비롯하여 당이 부단한 자기쇄신과 성찰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현대 정치사를 살펴보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위 정권 3차례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문민정권 3차례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겪어볼 정권은 종류별로 다양하게 다 겪어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21세기의 미래와 고령사회의 과제들을 생각해보면서 과연 어떤 사고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국정운영의 주체로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이 요구됩니다.
노무현 정권 위기 본질과 한국정치의 과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