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한국에서 지방자치제는 80년 민주화운동의 산물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해산 되었던 지방의회는 80년 광주항쟁과 87년 6ㆍ10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라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확대와 참여, 세력의 확장에 의해 복원되었다. 소위 다수 국민들의 민주주의 열망과 사회적 평등을 부르짖던 풀뿌리 민심이 지방자치의 시대를 복원시켰다.
지방자치제의 부활을 계기로 아래로부터의 주민참여가 시대의 화두가 되고 ‘참여정치'에 대한 열망은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지역주의에 의한 왜곡된 정치구조는 지방자치의 발전을 가로막아왔다. 수십년간의 영ㆍ호남간의 지역불균형 발전으로 인한 지역갈등은 한국 정치 발전과 지방자치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요인이 되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지역불균형을 조장하고 오히려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여 영ㆍ호남간의 지역갈등을 넘어 전국적인 지역간 불균형발전으로 확대되었고, 지역내 불균형발전에 따른 사회적 갈등의 근간이 되고 있다.
또한 수십년간 독재정권하에 온갖 정치ㆍ사회ㆍ경제체제하에 특혜와 혜택을 누려온 지역내 토착세력들은 지방자치제를 보수세력의 정치적 합법화, 세력화 기회로 활용함으로써 오히려 풀뿌리보수주의는 강화되어 왔다. 참여정부하의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전략은 그 뜻과 의도와 무관하게 정치행정엘리트, 토착재력가, 보수언론, 기업들이 ‘지역혁신체제'의 핵심세력을 형성하고 이들이 ‘지역지배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오히려 풀뿌리 보수정치세력의 확대, 강화를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역내 전통적인 보수정치세력의 확대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지역운동세력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오고 있다. 이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하여 진보적인 세력들이 ‘지역운동'으로 눈을 돌리고 실제적인 지방자치운동에 관심과 열의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출발은 참여정부의 ‘보수주의 강화'가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참여정부는 지역내 전통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보수적 지형을 그대로 활용하고 그들을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의 동력으로 삼았으며 ‘성장제일주의'등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지역개발과 외자유치라는 전통적인 외형적 경제성장모델을 지역에 심으려 하였다. 그래서 결국 지역혁신이 아닌 지역보수주의 강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참여정부는 지난 7월 투자활성화를 통한 지역발전을 도모한다는 1단계 국가균형발전계획을 보완하기 위해 제2단계 국가균형발전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국가균형발전특별법'개정안이 산업자원부의 이름으로 정기국회에 제출하였다. 참여정부는 제1단계 국가균형발전종합계획이 수도권 집중집화로 인한 지역공동화, 풀뿌리보수주의의 강화 등 지방자치에 역행하는 결과를 일정 정도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번에 제출된 제2단계 국가균형발전종합계획은 여전히 제1단계의 발전계획과 기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의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여정부의 지방자치에 대한 태도는 ‘개발론과 성장론'에 기반한 경제적 관점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앙정부의 성과를 강화하고 도모하는 차원의 지역균형발전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국가 균형발전의 상징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 과밀정도와 개발정책, 주요 산업ㆍ행정기능의 집중정도를 통해 지역내 질 좋은 일자리와 교육기반 시설, 교통문제, 주택문제 등 지역주민의 민생문제가 판단근거가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추진된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수도권 과밀화 현상을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켜 왔다. 인구의 과밀여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구조가 지역간 불균형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지방은 돈 구경하기조차 힘든 경제활동의 변경지대로 추락하는 반면, 수도권은 돈이 넘치고 있다.
2001년 말 현재 수도권의 인구 집중도가 46.5%인데 반해 기업집중도는 56.6%에 이르고 있다. 수도권 집중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대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여 지역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지방분권의 기반이 되는 재정확보와 인구유입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각종 인허가 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고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역불균형 발전현상을 차단시켜나가야 한다.
최고의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대학의 경우 수도권 집중도가 39%이며 특히 대학원은 83%에 달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매년 수능성적 상위 5% 학생 가운데 인문계의 65~70%, 자연계의 55~60%가 서울 소대 대학으로 진학한다고 발표하였다. 비수도권에 비해 2배 이상의 진학률을 보이고 있어 자녀교육을 생각하는 부모들이 수도권으로 이사하는 현상을 설명해 주고 있다. 문화적 혜택면에도 공연예술행사가 비수도권에 비해 수도권이 5배 이상 유치하는 등의 격차를 보이고 있어 문화적 편중도 심각한 상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공립대의 지방이전을 적극 추진하여 지방특성과 산업기반에 기여하고 지역내 인재육성의 창구로서 지방대학을 설립하고 지역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국가의 불균형 발전의 상징이 되고 있는 수도권 과밀화 문제는 토지가격 상승과 주택부족 현상을 불러오는 주범이 되고 있다. 교통혼잡과 과밀, 환경오염 등을 초래하여 사회적 비용을 크게 늘리고 있다. 지역간 불균형을 심화하여 지역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부의 수도권 개발정책도 큰 문제이다. 서울로의 인구집중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수도권에 수많은 신도시를 개발했다. 신도시 개발효과는 수도권 과밀화를 촉진하는 효과만을 불러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도권 개발을 제한하고 지방도시 및 농촌경제 활성화를 위한 획기적인 농업정책을 실현하여 지방의 독자적인 경제활동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 특히 농업시장의 개방에 다른 농촌의 공동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풀뿌리 지역경제공동체를 마련하여 농업을 미래산업으로 육성해 나가야 한다.
수도권 집중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주요산업과 주요 행정기관과 서비스 시설이 수도권, 특히 서울에 집중되었다. 수도권 인구집중은 정치, 경제, 일자리, 교육, 문화, 주택, 의료, 복지 등 전 분야에서 지방보다 접근성이 월등히 좋다는 이유때문에 발생한다. 지방자치와 올바른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기업의 지방이전 유입효과와 좋은 일자리, 교육과 문화적 환경, 의료시스템과 서비스 등이 종합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수도권 과밀화 등 지역간 불균형발전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방분권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방분권화는 지방정부의 권한강화가 목적이 아니라 실제적인 지역주민의 직접 참여와 주민자치의 기반마련이 보장되는 권한이양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민소환제와 주민참여예산제의 실시는 커다란 성과라 수 있다. 앞으로는 주민재정투표제, 주민발안제 등의 제도 마련도 추진되어야 한다.
지방자치와 분권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실현이란 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다. 지역주민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체가 되기 위한 지방분권, 지역간 불균형발전에 따른 지역주민간의 불신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문제, 지역주민간의 유대와 공동의 이해를 합의하고 실천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지방분권이고 지역균형발전이다. 근본적인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전환 없이 제대로 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확대와 주민운동, 주민참여의 확대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강화, 재정확대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중앙정부는 지역간 불균형발전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선 지방분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정략적 분권을 넘어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되 주민이 참여하고 감시하는 전방위적인 체계 재정비가 필요하다. 지방분권의 핵심은 활동의 근간이자 토대가 되는 지방재정의 분권이다. 지난 10여년간 지방분권을 추진해온 일본은 중앙과 지방의 재정 및 사무비율이 7:3에서 4:6으로 변화되어 지방자립과 자생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지방분권과 자치의 근간이 되는 재정의 독립성을 위해서는 국세와 지방세간 조정, 광역과 기초지방세 조정, 지방세의 신설 등 다각도의 지방재정 확충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국회의 동의와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재정문제만큼 중요한 사항은 지방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분별하게 중앙행정기관의 지방출장소 역할을 하는 특별지방행정기관 중 대부분을 과감하게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고 광역단위의 자치경찰제도를 도입하고, 일반자치와 교육자치를 통합하여 지방교육자치제도의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위로부터 시행된 ‘지방자치제'라는 한계로 인해, 지방자치와 주민자치운동이 미발달된 한국의 지방자치제는 보다 강력한 아래로부터의 주민운동, 주민자치활동 기풍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지방분권을 위해서는 지역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지방자치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정책을 입안, 실현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과 철학이 부족하면 중앙권력 기관의 권한이양을 쉽사리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 직속기구의 설치나 중앙정부 차원의 행정기관의 설치도 중요하고 헌법상의 지방분권에 대한 규정도 중요하지만, 아래로부터의 지역여론 형성 등을 통한 중앙과 지방의 실질적인 ‘분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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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과 지역간 균형발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척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