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가 특별시와 광역시의 자치구의회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법(가칭)을 처리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교통 통신의 발달, 전자정부화 등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맞게 지방행정체제도 적절히 변화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수긍이 가지만, 현재 중앙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절차와 방식 및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지방정부와 지역주민의 의견을 배제시킨 채 중앙의 일방적 의사결정 방식을 통한 지방행정체제 개편 추진 방식은 지방이 중앙에 전적으로 예속된 수직적 상하관계로만 보는 과거 중앙집권적 권위주의 시대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또한 개편의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특수한 배경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우리와 다른 상황에 있는 선진국의 개혁 방향을 무조건 동경하고 그대로 따르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에서 전혀 벗어나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된 지방행정체제 개편안은 시 군 구 통합 및 광역화, 자치구의회 폐지와 그에 따른 구정․구정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지방정부의 규모를 확대하여 권력이 주민들로 멀어지며 주민참여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 지방분권과 주민자치에 역행하는 것이다.
개편에 따른 주민자치기능 약화를 보완하기 위해 읍 면 동을 자치기구화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개편의 기본방향이 광역화 집권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 만큼 읍면 동을 통한 주민자치 실현에는 기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행정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민주성, 효과성, 효율성, 공평성 등 다양하다. 현재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집권적 방향으로의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오직 효율성에만 기초하고 있으며, 민주성, 공평성 등 나머지 중요한 가치들을 무시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장점과 가치들을 덮어둔 채 부분적인 단점과 문제점만을 부각시키며 국민들을 대상으로 개편의 정당성을 부풀려 홍보하고 있다.
효율성에 관해서도, 효율성은 크게 생산적 효율성(공공재나 서비스 생산의 비용 절감)과 배분적 효율성(주민들이 원하는 공공재나 서비스를 적정 수준으로 공급)의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현재 중앙정부가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생산적 효율성이다.
생산적 효율성은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의 최고의 가치이며, 그것을 행정의 최고의 가치로 보거나 행정의 절대적 기준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다른 한편으로, 일반적으로 배분적 효율성은 오히려 지방정부의 규모가 작고 분권화된 행정체제에서 증대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효율성을 담보로 한 중앙정부의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정당화되기 어려우며, 그 속에 지방을 더욱 더 중앙에 예속시키고자 하는 다른 저의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시 군 구 통합 및 광역화는 선진국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무비판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따라 갈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재 기초지방정부의 규모가 선진 외국에 비해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크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개편이 필요하다면 중앙이 미리 개편 시기와 방안을 정해 놓고 일방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위에서 제기한 여러 가지 행정의 가치들을 기준으로 한 충분한 검토․분석 및 주민투표를 통한 주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후 개편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통합이 필요한 지역이 있으면 통합하되, 오히려 반대로 구역을 분할해야 할 지역이 있으면 과감히 분할하여야 한다.
자치구의회를 폐지하는 것은 한마디로 대도시권 기초자치단체의 자치권을 대폭 감소시키는 것이다. 현재 자치구의 고유기능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 개편안이 행정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수 있는 부분이 일부 있으나, 지방자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민참여와 주민자치의 가능성은 더욱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더 큰 문제점을 제기한다.
구의회를 폐지하기 보다는 인접하는 소규모 자치구의 통폐합, 그리고 광역시(특별시)와 자치구 사이의 기능 재분배를 통한 비광역적 기능과 사무의 과감한 자치구로의 이양 등의 방법으로, 효율성과 주민자치의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현재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안은 절차와 내용의 모든 면에서 중앙집권체제를 강화시키고 지방분권과 주민자치에 역행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중앙정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지방행체제 개편 추진을 중단하고, 지방과의 소통을 통해 지방의 이해를 반영시키고 반드시 최종 결정은 주민투표 방식을 거쳐야 할 것이다.
정치권과 지역주민 모두 현 상태를 바꾸는게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개혁이 아닌 개악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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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분권혁신운동본부 지방행정체제 개편안 논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