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그 때 그 사건 (여름특집)
이 사건을 수사한지 벌써 4년이 흘렀다. 그 때도 지금처럼 무덥고 비가 많이 내리는 때였다. 만 4년 전의 일인데도 어제 일 같기도 하고 아득한 옛날 일 같기도 하다.
이석건 변호사
그 동안 이 사건 총괄책임자인 이동호 부장님(순천지청장 역임), 부책임자인 이승영 부부장님(인천지검 부장검사 역임), 그리고 주임검사인 나와 최관수 검사는 검사직에서 사직을 했다. 수사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홍용준 검사, 변필건 검사, 김수민 검사는 훌륭하게 검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사건을 후일담으로 써도 되는 것인지, 수사백서도 아닌 후일담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쓴다면 어느 부분까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난감함이 앞서지만 절친한 후배검사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써보기로 결심했다.
후일담으로 인해 혹시 당시 경찰수사관계자 등에게 곤혹스러움을 안겨줄까 염려스럽고 한편으로는 사형미행자로 남아 있는 유영철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영철은 당시 나에게 많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개요는, 유영철이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2003. 9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사이에 4곳의 부유층 주택에 침입하여 8명의 노인을 살해하고, 우발적으로 황학동 노점상 1명을 살해하고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부녀자 1명을 살해하였으며, 몸을 파는 여성들에 대한 환멸감을 느낀 나머지 2004. 3월부터 같은 해 7월까지 사이에 출장마사지사 11명을 살해한 후 암매장하는 등 총 21명을 연쇄살해하였다는 것이다.(그중 동대문구 이문동 사건은 무죄 확정).
21건의 살인사건 중 8건의 부유층 연쇄살인사건 및 2건의 우발적 살인사건 수사는 내가 맡았고 11건의 부녀자연쇄살인사건 수사는 최관수 검사가 담당하였다. 그와 같이 업무를 분담하였기 때문에 후일담은 아무래도 부유층 연쇄살인사건 수사를 중심으로 쓸 수 밖에 없음을 밝힌다.
유영철 검거
.jpg) 내가 이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4. 7. 16.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 3부 검사실에서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현 광역수사대) 경찰관 몇 명이 찾아와 검거한 절도 용의자가 기동수사대 사무실에서 도주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나는 용의자를 신속히 검거하라는 말과 함께 경찰관들을 돌려보냈다.
그로부터 약 1시간 후인 11시 40분경 경찰로부터 용의자를 검거하였다는 유선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그가 바로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이었던 것이다. 2004. 7. 15. 새벽 5시경 검거된 유영철은 범행 일체를 자백할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같은 날 자정이 지나 경찰이 방심한 틈을 타 도주하였으나 영등포역 부근에서 재검거된 것이었다. 유영철은 재검거 당시 자신을 잡은 것은 경찰이 아니라 희생자들의 영혼이라며 범행일체를 털어 놓았다고 한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만약 당시 용의자를 신속하게 재검거 하지 않았다면 이후에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도 가끔은 등골이 오싹해지곤 한다.
유영철과의 첫 대면
나는 2004. 7. 17. 오전 기동수사대장으로부터 구체적인 사건내용 및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형사절차법, 증거법적인 문제들을 중심으로 수사지휘를 하였다. 작년에 개봉된 추격자라는 영화에서 다소 신경질적인 모습의 검사가 기동수사대에서 기동수사대장을 마구 다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반적으로 검사가 경찰 수사를 훼방하는 듯한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이 장면은 내가 기동수사대장에게 수사지휘를 한 것이 모티브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며, 그렇다면 아무리 각색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당사자인 나로서는 다소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위와 같이 수사지휘를 마친 후 바로 부유층 연쇄살인사건 현장검증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 유영철을 대면하게 되었다. 전날부터 세차게 내린 비는 이날도 줄기차게 내렸다. 당시 유영철은 검정색 계통의 모자를 쓰고, 군청색 계통의 경찰 판초우의를 입고, 입에는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비오는 날 위와 같은 옷차림새의 유영철의 범행재연 장면을 지켜보고 있자니 괴기스러운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유영철의 눈은 생각보다 해맑고 한편으로는 고독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내가 경찰에게 어떤 상황에 관하여 질문하다가 그 소리에 신경이 곤두선 유영철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순간이지만 번득이는 느낌이었다. 범행재연에 방해가 되니 조용히 하라는 눈빛으로 받아 들여졌다.
나중에 유영철에게 나를 왜 쳐다보았느냐고 물어보니 검증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 경찰정복차림이 아닌 양복차림은 나 혼자라서 그냥 한번 쳐다보았을 뿐 별 뜻은 아니었다고 한다.
유영철의 호기
유영철은 경찰에서 140여명의 기동수사대 경찰관들에게 전원 특진을 시켜 준다며 호기를 부리면서 유치장 근무 경찰관들에게 근무를 똑바로 서라며 훈계까지 하였다. 유치장에서 수감자 군기반장 역할을 하였던 것은 당연하다.
유영철은 과거 경찰관 사칭 공갈 범행을 하였으며 검거되었을 때는 경찰을 우롱하며 도주한 적이 있기 때문에 경찰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유영철은 그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장난기 어린 호기를 부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부검참여
.jpg) 검찰수사관과 함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에서 집행된 부녀자 연쇄살인사건 피해자 11명에 대한 부검에 참여를 하였다. 부검의는 농담조로 유영철이 이미 부검을 모두 해 놓았으니 굳이 참여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부검의의 말대로 11구의 토막난 사체들은 장기가 텅 빈 채 부검대위에 올려져 있었다. 토막이라는 표현은 비인간적이므로 쓰지 말자고 하지만 그 표현이 여기서 적절한 할 수 밖에 없다.
암매장되었다가 발굴된 사체들이라 색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체의 색깔은 흑색이다. 그런 사체들이 하얀 벽의 부검실내 곳곳에 흩어져 있었으니 마치 흑백 텔레비전 화면같았다.
눈뜨고 보지 못할 광경인데다가 부패한 사채 냄새는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수 많은 변사체 부검 참여 경험과 다수의 살인사건 기소 경험이 있었지만 정말 참기 어려웠다. 약 10분만에 밖으로 나와 검찰수사관과 함께 담배를 피면서 잠시 부검현장 부근에 머물다가 검찰로 복귀하였다.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길거리를 생기발랄하게 걸어가는 여자들을 보았다. 부검실에 있는 여자들은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길래 저런 처지가 되었을까 ?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였다. 그날 폭음을 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10층 특조실
유영철의 신병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의 어느 휴일날 검찰청 10층 특조실에 혼자 출근하여 선송치된 기록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10층 특조실은 출입이 제한되는 곳으로서 혼자 있으면 음침한 느낌을 받는 곳이다.
그 때 비가 많이 내렸다. 기록에는 피해자들의 끔찍한 부검사진과 사건현장 사진 등이 편철되어 있었다. 부검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그대로 기록에 붙어 있어 기록에서는 사체 썩은 냄새가 은근히 배어난다. 특히 습기가 많은 비오는 날 밀폐된 공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기록을 계속 보는 것이 괴로웠지만 직업정신을 발휘하여 기록을 검토하는데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하였다. 순간 깜짝 놀랐고 공포감이 밀려왔다.
도저히 기록을 더 볼 수 없었다.
신병 송치 당일
유영철의 신병이 영등포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날 아침 영등포경찰서에서 유족 중 한명이 우산대로 유영철을 찌르려고 하다가 호송 경찰관에게 밀쳐 넘어진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 사건은 생중계되었다. 그 일 때문에 첫날부터 더욱 긴장했다.
부녀자 연쇄살인사건부터 먼저 검찰로 송치되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약 10여일간 유영철을 상대로 피의자신문을 하기 시작했다.
화가를 꿈꾸었던 유영철은 중학교 시절 운동과 싸움을 잘해 인기가 많았고 남자다운 편이었다고 한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절도죄로 구속되면서 점차 세상을 왜곡된 시각으로 보게 되었지만 기본적인 심성은 밝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내가 피의자신문 내내 수없이 담배를 물어 피우자 유영철은 ‘담배를 끊으세요, 어쩌면 나보다 검사님이 먼저 죽을 수도 있어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위와 같은 심성의 단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경찰이 한말이 떠올랐다. 유영철은 전체 사건 중 일부만 자백하고 사형집행이 임박하였을 때 한건씩 한건씩 자백하는 방법으로 삶을 연장해 나가려고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되면 폐암에 걸린 나 보다는 유영철이 더 오래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4년이 지난 지금 나보다 4살이 연하인 유영철이 술담배에 절은 나 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사초기 유영철과의 심적 유대감을 쌓기 위해 나의 과거사 등에 관하여 먼저 이야기를 하였고 유영철도 자신의 유년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에 관해 털어 놓았다. 하지만 전부 털어 놓은 것은 아니다. 유영철이 털어 놓은 이야기들은 후일담에서도 밝힐 수 없다.
이감요구 및 단식
그러던 어느날 유영철은 영등포구치소로의 이감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기 시작하더니 검찰 소환에 불응하였다. 서울구치소에는 사형폐지를 고대하는 약 40여명의 사형미집행자가 수감되어 있는데 자신으로 인해 그 동안 조성된 사형폐지 논의는 물거품이 될 것이므로 그들의 싸늘한 눈빛과 마주치는 것이 힘들며, 과거 영등포구치소 수감시절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준 교도관의 계호를 받으며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런 요구는 형평성 문제와 계호 문제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유영철은 3일간 물만 마시며 단식을 계속 하였다. 피의자 신문 자체가 중단되는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침해 문제가 대두될 수 있으니 서울구치소로 접견을 가서 유영철을 설득하라는 말이 나왔으나 망설여졌다.
유영철은 과거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모종의 발작을 일으켜 경찰이 수갑을 풀어주면 그 틈을 타 도주한 경험이 있었으며 7. 15. 자정에도 같은 방법으로 도주하였다. 혹시 영등포구치소로 이감되는 과정 또는 시설이나 계호가 다소 열악한 영등포구치소에서 탈출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또한 유영철 같은 사람의 요구도 수용하면서 왜 나의 이감요구는 받아들여주지 않느냐는 다른 재소자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유영철은 결국 단식을 포기하였고 종전보다는 다소 기가 꺽였다. 유영철은 ‘검사님 선물 하나 줄께요’라고 하였다. 선물이라는 것은 증거였다.
유영철은 경찰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다수의 증거 소재를 이야기하였고 그 덕분에 결정적 증거를 많이 찾아냈다. 사람들은 수사기관이 자백이나 진술에만 의존할 뿐 과학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진술을 통해 찾아 낸 단서증거를 토대로 과학수사가 개시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증거들은 결국 사람의 입에 의해 의미를 갖게 될 수 밖에 없다. 과학수사는 보조적 수사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와 같이 찾아 낸 증거들 중 유영철의 구두 보조뒷굽을 찾아 낸 경위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겠다. 키가 크지 않은 유영철은 구두 뒷축에 키높이 보조뒷굽을 꼽고 부유층 주택가 범행현장에서 범행을 했다.
따라서 범행 현장의 족적과 구두 보조뒷굽의 동일성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과는 달리 보강증거가 취약하였던 부유층 연쇄살인사건에서는 매우 중요한 결정적 물증이었다. 유영철은 나에게 기동대 승합차 의자 밑을 뒤져보면 그 보조뒷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하였고 결국 그 승합차 안에서 보조뒷굽을 수거했다.
유영철은 2004. 7. 15. 최초 검거되었을 때 부유층 연쇄살인사건에 관하여 자백을 하였다가 혼절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부유층 주택 사건현장을 지목해 달라는 경찰의 요청에 따라 현장으로 향하는 승합차 안에서 유영철은 기침을 하는 척하면서 허리를 숙여 손톱으로 보조뒷굽을 뽑아 의자 밑에 꽂아 놓았던 것이다. 뽑아 낼 때 손톱에서 피가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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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은 왜 경찰에서는 위와 같은 결정적 증거들의 존재에 관하여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경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 지쳐 미처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경찰, 검찰에서 일단 자백을 하였다가 재판단계에서 부인을 하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일까, 그 속마음을 지금도 알 수 없다.
변호인 선임
유영철은 모 여 변호사를 자신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그 변호사는 이름만 들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의 그런 분이었다.
그 변호사는 유영철이 저지른 구기동 부유층 살인사건 주택 부근에 살고 있었다. 유영철은 당초 그 변호사의 집에 침입하여 살인범행을 하려고 하였으나 마침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어 그곳에서의 범행은 포기하고 위 주택을 범행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했다. 사람의 생사가 한순간에 갈린 것이다.
유영철의 요구에 대하여 그 이유를 반문하자, 그 변호사가 자신에게 희생당할 뻔 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잘 이해할 것이며 여성이기 때문에 부녀자 연쇄살인사건 범행의 동기 등에 관하여도 잘 이해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럴듯한 궤변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사형폐지단체 변호사가 자원하여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유영철은 처음에는 그 변호사의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꺼렸었다. 나중에 법정에서 나와 그 변호사는 여러 가지 문제로 날카롭게 대립했다.
유영철의 발작
유영철은 어느날 오후 의자에 앉아 있다가 슬며시 옆으로 넘어졌다. 그쪽은 벽면이 있는 곳이었다. 만약 반대쪽 바닥으로 넘어졌다면 밑으로 쏠리는 무게 중심 때문에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입에서 거품이 흘러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공중보건의가 유영철의 상태를 살피더니 어떤 원인 때문에 위와 같은 증세를 보이는지 모른다고 했다.
유영철은 자신에게 간질발작 증세가 있으며 이는 집안 내력이라고 하였지만 유영철의 가족들에 의하면 그런 내력은 없으며 유영철이 한번도 간질발작 증세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나중에 나온 공주치료감호소 감정결과 역시 그러하다.
유영철에게 다른 원인에 의한 발작 증세가 있는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주 전 발작 증세를 일으켰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발작도 의도적인 발작, 즉 연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어떤 교도관에게 들어보니 유영철은 영등포구치소 이감요구를 계속 거부하는 나를 물먹이기 위해 창문으로 떨어지는 등 자살시도를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유영철이 발작을 일으켜 나를 떠 보거나 아니면 도주, 또는 위해를 가하려고 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잠시 후 깨어난 유영철에게 오늘은 조사를 마치자고 하였으나 유영철은 잠시 쉬면 괜찮다고 하였고 결국 저녁까지 조사가 이어졌다. 나중에 부장님에게 이 일을 보고하자 혹시 있을 사고를 염려하던 부장님은 ‘이 수석 간 크네’라고 했다.
.jpg) 동대문구 이문동 사건 무죄
동대문구 이문동 부녀자 살인사건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고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되었다. 그 후 2006년도에 검거된 연쇄살인범 정 모씨가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였고 결국 법원에서 그의 범행인 것으로 유죄 확정됐다.
이 사건은 동대문구 이문동 좁은 골목에서 유영철이 부녀자를 칼로 찔러 살해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다른 사건과는 달리 사건장소가 실외이고 우발적 범행이며 무엇보다도 유영철이 작성한 진술서 도면이 현장상황과 정반대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범죄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고려하였다. 그래서 유영철에게 진범이 맞는지 여러번 추궁을 했다.
유영철은 자신이 진범이 틀림없다며 그럴듯하게 사건 내용을 설명하였다. 유영철에게 이 사건은 빼고 다른 사건만 먼저 기소하겠다고 하니 유영철은 화를 버럭 내면 ‘왜 나를 믿지 못하느냐, 그럼 다른 모든 사건의 자백도 믿지 못한다는 말인데, 그럼 지금까지의 모든 자백을 번복하겠다’라는 취지로 협박성 발언을 했다.
결국 21건 모두를 기소했다.
제1회 공판기일에서 유영철은 21건 모두를 자백하였다. 그런데 제2회 공판기일에서 유영철은 경찰로부터 이 사건을 자백해 주면 유영철의 아들을 사회기관에 위탁하여 대학까지 보내 주겠다는 등의 회유를 받고 허위 자백을 하였다고 주장하였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져 1심, 2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유영철은 재판 내내 나를 조롱하였다. 이감요구를 받아 들여주지 않은 것에 대한 반감이 실린 조롱이었다.
이 사건의 피해자 어머니가 바로 영등포 경찰서에서 유영철을 우산대로 찌르려고 하였던 유족이다. 1심 무죄선고 후 피해자의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 와 ‘딸이 꿈에 나타난다. 내 딸은 도대체 누가 죽인 것이냐’라고 하였고 나는 2심에서 공소유지를 철저히 해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대법원 무죄 확정 이후에도 판결결과에 대하여 반신반의하였으나 정모씨가 자신의 범행이라고 하니 판결결과에 대하여 승복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유영철이 끝까지 이 사건이 자신의 범행이라고 주장하여 유죄 확정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중에 검거된 정모씨가 그래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였을까. 자백하였다면 그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은 증거에 의한 상대적 진실일 뿐 절대적 진실은 아닐 것이다.
여죄 ?
유영철은 4건의 부녀자 살해범행이 더 있다고 하였고 그 사건 내사는 최관수 검사가 담당하였다. 유영철은 그 사체도 토막을 내서 다른 사체를 암매장하였던 야산 주변에 암매장했다고 말했다.
최관수 검사는 유영철을 대동하여 그 주변에서 두차례나 대대적인 발굴작업을 벌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장소는 이미 11구의 사체가 발굴된 곳으로서 더운 여름날이라 발굴 이후에도 사체 부패된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다. 그 냄새를 견뎌가며 용하다는 점쟁이까지 동원하였지만 실패한 것이다. 과연 유영철의 말이 진실일까, 거짓일까, 지금도 모르겠다. 만약 진실이라면 아직도 땅에 묻혀있는 피해자들의 원혼은 어떻게 달래야 하는 것일까?
법정 소동
재판과정에서 유영철은 재판부가 영등포구치소로의 이감요구를 받아 들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대위로 뛰어 올라가려고 하는 등 소동을 피웠다. 그 공판기일에는 내가 참석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정말로 아찔한 상황이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나 역시 과거 살인미수 사건 공판시 최후 진술을 하다가 검사석을 향해 뛰어든 피고인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계체조를 하였다는 유영철은 날렵하기 때문에 만약 수갑만 채워져 있던 상태였다면 법대까지 뛰어 올라 갈수도 있었을 것이다.
.jpg) 그 이후 피해자 유족들의 증인신문기일 때 유영철은 또 다시 소동을 피웠다. 유족들은 유영철이 무서워 유영철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증언을 하고 있다. 그때 방청석에 있던 누군가가 유영철을 향해 ‘저 새끼 분쇄기로 갈아 죽여’라고 외쳤다. 그는 황학동 노점상 살해사건 피해자의 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영철은 부녀자를 토막 살해한 후 장기는 분쇄기로 갈아 변기 구멍 등에 버렸는데 그는 유영철도 같은 방법으로 죽이라는 것이었다.
유영철은 즉각 반응을 보였으나 온몸에 쇠사슬이 감겨 있었고 교도관들이 신속히 제지하는 바람에 큰 난동을 피우지는 못하였으나 발버둥을 치면서 발로 앞에 있던 플라스틱 의자 여러 개를 부셔 버렸다.
당시 그 피해자의 형은 법정 소란행위로 일시 감치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피해자의 형은 그로부터 얼마 후 투신자살을 했다. 피해자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던 피해자의 형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투신자살하였다는 언론보도를 접한 기억이 있다. 유영철이 이 일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증언하러 온 유족들은 모두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유족이었다. 그 피해자들은 어렵게 살아 온 출장마사지사들이다. 반면 부유층 연쇄살인사건 피해자들의 유족들은 증인출석을 모두 거부하였다. 그 사건의 피해자들은 모두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었다.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사형 확정 후
검사직을 사직한 이후 당시 수사경찰관들과의 술자리에서 최관수 검사가 유영철을 면회갔었던 일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유영철은 면회자들에게 법무부장관의 형집행장을 가지고 오면 여죄에 대하여 털어놓겠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빨리 죽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여죄가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어느 것인지 모르겠다.
맺음말
사건수사 후일담이라고 한다면 수사를 둘러싸고 펼쳐진 재미있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가벼운 터치로 그려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려고 하였지만 가면 갈수록 무거운 쪽으로만 가게 된다. 글 재주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사건의 성격, 피해자와 그 유족들을 생각할 때 결코 가볍게 할 수 없다.
후일담으로 인해 사건 관계자들에게 혹시 누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깊은 양해를 바란다.
피해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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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유영철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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