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형 여론조사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올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국정과제 중의 하나가 정부혁신이다. 과거에도 사정활동 등을 통한 공직사회 기강쇄신이라든지 또는 공무원 수를 감축하는 구조조정 등의 작업이 있어왔지만 참여정부는 정부혁신에 대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공무원을 단속과 처벌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변화의 주체이자 혁신의 주체로 보고, 모든 의사결정과 행정프로세스의 효율성과 효과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과 문화의 정착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 변화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할 수 있겠다.
결국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효율성을 높이고 해야 할 일을 빠뜨리거나 잘못된 의사결정의 가능성을 줄여 대국민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 혁신의 주된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요즘 기업에서 한참 적용 중인 6시그마 운동 같은 원리나 정신을 공직사회에 도입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일반국민이나 심지어 언론관계자들의 눈에도 그다지 잘 띄진 않지만 지금 공무원 사회는 어쩌면 건국 이후 가장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혁신을 통해 ‘일 잘하는 정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작업이 별로 표가 안 나고 효과도 지금 당장 드러나는 게 적어 혁신주체라 할 수 있는 공무원의 입장에서 솔직히 별로 신나고 재미있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요구되는 노력과 고통의 수준은 상당하다. 기존의 관행깨기, 새로운 발상, 열린 자세, 그리고 혁신 및 맡은 일의 전문성을 배가하기 위한 학습 등 끊임없이 일하는 방식의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국민들은 깨끗한 정부 원해
한편 국민들은 정부혁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통령이 정부혁신을 하도 강조하다 보니 국민들 사이에 이번 일이 일과성으로 지나갈 것 같지는 않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체로 국민들은 아직 유능하고 일 잘하는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직까지는 정부나 공무원에 대해 비리개선, 투명성을 더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을 잘하느냐 하는 것은 나중 문제고 우선 부정부패부터 없애라는 요구다. 근래 공직자들의 재산문제 등에 대하여 국민들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이러한 인식의 흐름이라 할 수 있겠다. 열심히 혁신을 하고 있는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국민적 인식이 서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를 만드는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하고 혁신의 또다른 목표이기도 하다. 지금 정부에서 새로이 도입하여 정착시켜 가고 있는 업무관리시스템도 업무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원천적으로 담보될 수 있도록 짜여가고 있다.
또한 투명성 개선을 위해 부패방지위원회의의 기능을 강화하고 있고, 일부 세부 방법론에서 논란이 있지만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하고자 하는 것도 ‘깨끗한 나라 만들기’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능력 있는 정부’에 대한 요구 잠재돼 있어
그렇다고 국민들의 요구가 ‘깨끗한 정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15일 대통령비서실의 여론조사비서관실이 우리나라 중앙부처 공무원을 대기업 종사자들과 비교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이 공무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일단을 볼 수 있다.
국민들은 우리나라 공무원의 도덕성과 능력, 자질에 대해 대기업 종사자들과 거의 비슷하게 평가하고 있다. 공무원에 대한 누적된 부정적 인식과 최근 우리나라 대기업에 대한 호의적 평가를 감안해 본다면 이 같은 공무원 평가는 상당히 좋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적인 감각이나 변화에 대한 적응능력 측면에서 국민들은 공무원을 대기업 종사자들에 비해 낮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기본적인 능력과 자질은 좋은데 보수적이고 구태의연하여 결과적으로 일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상당 부분 개개인의 문제를 떠난 조직의 문제, 문화의 문제로 확대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유능함에 대한 적극적 기대보다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를 바라는 소극적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또는 국가에 따라 그 크기나 범위가 다른 게 사실이지만 시장을 가장 중시한다는 미국을 보더라도 정부의 역할이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지식정보사회로의 급격한 이행, 기업활동 영역의 글로벌화가 진행될수록 국가 간의 경쟁이 더 중요해지고, 한편 공동체 내의 이해관계나 갈등조정 기능과 통합 능력도 더 요구된다.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정부 능력의 중요성은 개발독재 시대보다 오히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정부혁신, 국민과 같이 해야
아직까지 국민들이 공무원에 대해 소극적 기대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억울해 할 필요 없다. 국민적 기대를 그 상태에 묶어 놓은 것도 공직사회의 원죄라고 할 수 있다.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가 필요조건이라면 ‘유능하고 일을 잘하는 정부’는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필요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국민들도 이제 다음의 기대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부혁신은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대로 잘 알려져야 한다. 지금 추진하는 혁신은 국민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 국민들의 참여 속에 효율성과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와 문화의 변화, 그리고 정착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알리고 이해를 구하면서 때로는 칭찬을 부탁하면서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억울한 자들의 원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