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영 업무혁신비서관은 대통령이 모든 것을 생각해서 하자고 하는 것만 개혁의 방향이 아니라 여러분 한분한분이 오늘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개혁의 대상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고 자부한다면 개혁에 대해서도 여러분들이 그 선봉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여 지난 2003년 3월 29일의 대통령비서실 워크숍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비서실 직원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2년여가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대통령비서실만큼 내부 변화와 혁신을 이뤄낸 곳이 또 있을까? 감히 없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아직 부족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서 대통령비서실의 혁신은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히 진행 중이다.
2년 전 워크숍의 주제였던 ‘일하는 비서실, 변화하는 청와대’가 의미하듯이 이젠 대통령비서실 직원 가운데 누구도 청와대가 최고 권력기관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이런 변화를 고민하고 앞서 실천하기 위해 대통령 비서실이 앞장서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비서실 조직과 기능 정립
조직은 탄생과 동시에 개편의 대상입니다.
이 말은,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 출범 다음날 직접 비서동을 방문하면서 PPR(Policy Process Reengineering, 정책프로세스개선) 비서관실 직원들에게 던진 첫마디였다.
출범 1년차에 가장 중요한 비서실 혁신의 방향은 권위주의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로 구성된 대통령비서실의 기능과 역할을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합하게 바꾸는 것이었다.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의 4대 국정원리가 우선 대통령비서실 조직에서 먼저 구현되도록 만들어야 했다. 급변하는 국정운영 환경에 가장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였다.
지금까지 6차례에 걸친 조직개편은 바로 분권형 국정운영에 적합한 대통령비서실의 조직과 기능을 정립하기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총리와 행정부처 장관이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1차적인 책임을 갖고, 대통령비서실은 정책을 점검 관리하며 국정운영 전반을 전략적으로 기획하고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행정자치부가 최근 팀 조직으로 개편하였지만, 대통령비서실은 2003년 5월 1차 조직개편 때부터 팀제를 도입하고 필요할 경우 목적별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여 민간기업에서도 아직 정착이 덜 된 매트릭스(matrix) 형태의 조직운영 방식이 안정단계에 들어섰다. 최근 회의 및 T/F 운영을 위한 내부지침과 매뉴얼을 만들고 상시적인 조직과 마찬가지로 T/F도 과제를 관리하고 보고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되어, 조직운영 혁신에서도 앞서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정업무 하나하나의 기본을 갖추는 일하는 방식 혁신
그냥 타성적으로 하지 말고 자기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 목표를 분명하게 하고 어떻게 할 것이냐, 그 방법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기 혁신을 해 나가야 합니다. 개혁은 자기 혁신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역시 2003년 3월 29일의 워크숍에서 노 대통령이 강조한 청와대의 혁신방향을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규정을 바꾸어서라도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일하는 방식 혁신의 핵심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업무혁신의 과제를 찾아내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당장 국민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대통령비서실이 하는 일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업무매뉴얼을 작성하며, 업무추진 결과는 물론 과정까지도 철저하게 기록을 남기도록 하는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혁신활동이다.
1년 후 내 후배가 오늘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일 또는 비슷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 후배에게 무엇을 남겨 주어야 여기저기 물어보지 않고 간단하게 컴퓨터에서 몇 가지만 고쳐서 국민에게 더욱 가치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디지털청와대 구축을 목표로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e지원(e知園)이 탄생하였다.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진화되고 있는 e지원은 올해 내로 행정자치부가 주관이 되어 시범적용하고 표준모델을 만들어서 2006년 상반기까지 모든 중앙부처에 확산될 예정이다. 중앙 행정부처의 업무관리가 모두 디지털화돼 시스템에 의한 실시간 국정관리가 이루어지는 것이 점차 눈앞의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전자정부가 이제 대국민 서비스의 온라인화를 넘어서 행정부가 어떻게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며, 또 민원을 처리하는가를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단계로 진일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세계 5위로 평가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전자정부는 머지않아 세계 최초로 행정부의 업무추진 과정을 관리하는 정부업무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 세계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것이다.
R&B형 리더십이 비서실 혁신의 성공요인
2년여에 걸쳐 대통령비서실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러한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은 역시 대통령이다. 오랜 고민 속에서 나온 대통령의 혁신 아이디어는 보좌하는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도 많다. 그 과정에서 감동적인 에피소드들도 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e지원의 문서관리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2004년 초의 일요일 토론에서였다. 개발팀이 애써 설계한 내용을 보고 받은 뒤, 노 대통령은 전자칠판 앞으로 나가더니 미리 써온 메모지를 보면서 설계의 기본개념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써내려 가면서 설명하다 칠판의 아래 부분에 쓰기 위해 무릎을 구부리고 앉는 것이었다. 대통령이라는 권위적 이미지가 혁신의 리더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혁신중(2005) 이라는 책에서는 노 대통령의 문제해결 리더십을 R&B(Rational & Breakthrough)형이라고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합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철저한 상황 진단과 점검을 강조하는 한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추진하다가 난관에 봉착하면 처음의 목표를 처한 상황에 맞게끔 바꾸거나 타협하지만, 노 대통령은 원칙에 기반한 목적 지향의 돌파형 리더십을 발휘하여 혁신의 난관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난 2년 간의 대통령비서실 혁신을 돌이켜 보면서, 대한민국 참여정부의 혁신은 분명 선진한국의 길을 앞당기게 될 것임을 다시 한번 확신하는 기회를 가졌다. 감동이 있는 혁신은 결국 우리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바꾸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개편 자기혁신 끝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