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춘천의 ‘한국지방분권아카데미’에서 열린 「지방분권 대토론회 2007」에 다녀왔다. 대선시기를 앞두고 지방분권 및 지역균형발전 정책의제와 추진전략을 마련하면서 운동주체들 간의 교류 협력관계도 공고히 하는 등이 주된 목적이다.
이 날 토론회에는 먼저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회위원장이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분권 및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성과와 향후과제에 대해서 모두 발제가 있은 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으로 나누어 각각 정책의제 발굴을 위한 대표발제와 토론을 벌였고, 저녁식사 후에는 각 지역본부별 사업 추진 및 조직 강화에 대한 보고와 토론이 있었다.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지만 가장 뜨거웠던 논쟁점은 수도권지역과 비수 도권지역 사이의 분권운동에 대한 입장 차이 문제였다. 그리고 논의가 거기 까지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그렇게 번져 갈 소지가 있는 잠재적 쟁점으로는 비수도권지역 내의 강원 충청지역과 호남, 영남 사이의 각기 다른 입장 차이 문제도 함께 연관되어 있다.
우선 첫째로, 인천이나 경기지역과 같이 이미 ‘서울팽창’의 효과를 충분히 누리며 경제적 성취를 맛보고 있는 수도권지역(경기북부 일부는 제외)은 우리 분권운동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여 ‘지방분권’에 대하여는 흥미를 느끼지만 ‘지역균형발전’ 주장까지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떡방아간의 떡을 골고루 나누어야 한다는 ‘균형발 전’과 같은 논리는 오히려 좀 가라앉았으면 하는 것이 그 지역 많은 분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방분권’ 문제에 대해서도 (전략적으로 특별한 결단을 하지 않는 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으려면) 다소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는 처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로 강원도나 충청도처럼 수도권과 인접하여 사실상 ‘준수도권’과 같은 이점을 앞으로 점점 더 누리게 될(주5일제에 따른 강원도의 여가 및 관광 특수, 행정복합도시 신설에 따른 충청도의 신개발 특수를 떠올리면 되겠다) 지역의 특수한 처지이다. 수도권 외연확장의 효과를 겨냥해서 이른바 ‘수청권’(수도 및 충청권) 등의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수도권의 기득권을 함께 누려 보고픈 욕구가 강한 점에서는 수도권과 노선을 함께 해야겠지만, 그러나 갖출 것 이미 다 갖추고 있는 수도권과 자신들의 인프라 상태가 엄연히 다른 점에서는 국가의 노골적 지원(곧 균
형발전 정책)을 여전히 열망한다.
셋째로, 곡창지대라는 미명하에 개발시대의 산업화 혜택으로부터 장기간 소외되어 산업기반이 철저히 낙후된 호남지역은 ‘지방분권’보다는 오히려 ‘균형발전’ 논리에 따른 중앙정부의 대규모 지원정책에 훨씬 더 큰 관심이 있다. 그 반대로 영남지역은 수도권의 독주에 밀려 지속적 발전 동력이 가라앉아 있긴 하지만, 과거 개발시대에 크게 성장한 구미 대구 포항 부산 울산 마창지역 등 동남벨트의 대규모 공단과 생산거점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 영남지역은 행 재정적 분권과 자율만 확실히 주어지면 권토중래할수 있다고 나름대로 자기 잠재력을 믿고 있어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모두 부르짖지만) 상대적으로 ‘지방분권’을 좀 더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지방분권 및 균형발전의 병행 추진이라는 참여정부의 지방정책에는 입장이 각기 다른 제 지방의 욕구와 논리가 혼재하며 상충되고 있다.
춘천에서 있었던 위의 토론회 역시 각 지역의 그러한 특수성과 자기입장들을 잘 보여주는 경연장이었던 셈이다.
특히 경기지역 대표로 오신 이재은 교수님의 발언은 경기지역의 그러한 입각점을 한 치의 오차 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지방분권이나 균형발전의 논리를 앞세워 결국 지방 소재의 자본들에게 일거리와 이익을 갖다 주자는 주장(예컨대 지방자치단체 발주 건설사업에 그 지방업체의 참여지분을 대폭보장하자는 시책 등) 아니냐? 그건 결국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대결구조를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공간적 지역적 대립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민중간의 대립으로 잘 못 치환시켜 전선의 혼란만 부채질하는 행위 아니냐? 그러니 운동의 방향을 노-자 대립이라는 사회 총제적인 쟁점을 어떻게 이슈화할 지, 차라리 기존의 주어진 제도적 틀이나마 얼마나 기술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 지 고민하는 쪽으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를 그렇게 제기하면 맞받는 논리도 동일하게 들고 나오는 데 주저할 수가 없다. 곧 수도권 지역의 그런 논리야말로 현단계에서 실현 불가능한 총자본에의 투쟁전략을 강조함으로써 실현가능한 지배적 자본(수도권 소재의 대자본)의 양보 가능성마저 무산시키고, 결과적으로 수도권 대자본의 변함없는 기득권 고수와 지방 소재 중소자본 및 민중들의 성장 가능성을 변함없이 외면하겠다는 자세를 숨기고 있는 것 아닌가? 국가와 지방의 현존질서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만 무언가 될 수있다고 보는 비수도권지역들의 절규(!)는 비수도권 지역 중소자본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을 것은 사실이지만, 그 효과가 거기에서 그쳐버리고 지방 소재 민중들의 삶을 정체시키거나 후퇴시키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만약 지방들의 주장대로 분권이 강화된다면, 지방에 진출해 있던 수도권 소재 대자본(기계화 자동화가 한층 더 진전된)이 그동안 걷어 가고 있던 초과잉여의 일부가 오히려 지방 소재 민중들의 일자리증대로 명백히 반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나는 현재의 분권과 균형발전을 함께 추구하자는 이 전략 자체는 명분과 실질에서 모두 옳으며, 그것이 다수의 이익은 물론 궁극적으로 사회전체의 이익에도 합치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으로서는 균형발전론을 외면하면서 기존의 수도권 기득권 구조를 방치하는 그것이, 수도권을 둥지삼아 전사회적 이익을 너무 손쉽게 거두어들이는 대자본의 무임승차성 축적구조를 옹호하고, 그것이 결과적 장기적으로 한국자본 전체의 무기력화를 가져오는 트로이 목마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모든 개혁은 기득권 구조의 변화를 수반하며, 기득권 집단의 단기적 피해를 요구하게 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그런 개혁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개혁이 성취되면 그 효과는 모두에게 확산될 수 있다. 지금 개혁의 대상은 수도권 집중현상이며, 그것은 단기적으로 수도권의 정체를 가져올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수도권을 포함한 전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반대로 기존의 수도권집중을 개혁하지 않거나 그 개혁을 왜곡하며 변질시킨다면 단기적으로 수도권의 계속 번영을 구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피해는 수도권 이외 모든 지역의 장 단기적 피폐를 강요하고, 마침내 수도권 자체도 장기적으로는 위기대응력과 경쟁력을 잃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과연 그것이 ‘대한민국 만세’가 되는가, ‘일하는 민중들의 만세’가 되는가? 결국 아무 것도 가져오지 못 할 수도권 자신만의 단기적 탐욕에 불과한
것이다.
이 글에서 하나 더 해명되어야 할 쟁점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입장 차이 문제만큼이나 중요하게, ‘지방분권’과 지역간 균형발전’ 사이의 정책적 우선순위 문제가 함께 얽혀 있었다. 논의 흐름상 여기서는 전자의 문제를 먼저 다루었는데, 후자(곧 ‘지방분권’과 ‘지역간 균형발전’ 사이의 정책적 우선순위 문제)는 다음 15호 분권칼럼에서 다시 이어 다루기로 한다.
열기를 식히는 의미에서 번외 사족(蛇足) 한 말씀 ― 이번 행사를 다녀오면서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강원도 당국과 강원도지사의 지방분권운동에 대한 각별한 배려와 지원 의지였다. 춘천에 (사)한국지방분권 아카데미는 강원도 당국과 지방분권국민운동 강원본부가 협력 합작하고 행자부의 지원도 이끌어냄으로써 설립되었는데, 분권운동 관련 시민단체와 활동가, 공무원, 지방정치인 등의 인재 양성기관 같은 시설이었다. 부산의 지방정가는 꿈도 못 꿀 것 같은 그런…(혹시라도 그런 의욕을 가지신 부산시 당국자나 지역 정치인이 계신다면 이 부분은 정중히 사과드린다. 그리고 수도권 계신 분들이 이 글을 읽고 불쾌함을 느끼신 일이 있다면, 그 역시 인간적 감정과는 무관한 논리적 주장일 뿐이라는 점을 이해하여 주셨으면 한다.)
수도권 만세인가, 대한민국 만세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