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한반도 평화비전’이라는 이름으로 대북정책의 전면 수정을 발표해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냉전수구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 난다”는 북한과 집권 세력으로부터의 정치공세에 시달린 끝에 가까스로 찾아낸 묘책(?)인 듯싶다. 그리하여 좌파 색채가 가미된 일종의 위장개업’을 시도한 셈인데, 자칫 자유·우파 정당으로서의 정체성과 대표성만을 상실한 채, 이름 그대로 ‘수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누적된 부패와 무능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을 국민이 지지한 것은 유일한 자유·우파 대표주자였기 때문이다.
자유민주 사회에서 정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정강 정책에 대한 확신과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퍼주기’ 대북정책이 왜 잘못된 것인지, 또 현 좌파 세력이 재집권할 경우 국가안보가 흔들려 오히려 전쟁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 등을 확신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정책 수정은 이런 자신감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며, 보다 근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우파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한 것이다. 우선 핵폐기와 관계없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한반도 종전 선언, 그리고 평화협정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은 한반도 안보구도에 대한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분석 능력이 결여됐다는 방증이다.
또 ‘북한 종합부흥계획’이란 이름의 파격적 대북지원 계획에는 3만명의 북한 산업연수생 수용과 선진 기술의 대북전달, 남북한 FTA 추진, 연 15만t 쌀 무상 지원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무색케 하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더욱이 남한이 먼저 ‘북한 방송과 신문’을 전면 수용하고, 좌경 세력을 걸러내는 마지막 법망(法網)인 국가보안법마저 대체 입법하겠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친북·반미의 확산으로 전대미문의 혼란을 맞고 있음을 부인 못한다. 북한 정권은 국제사회로부터 도덕적·실효적으로 불신당하고 고립돼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동북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위폐제조·마약밀매 등 불법행동이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무엇보다도 인권유린의 참상이 국제사회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영국의 대처 수상은 수년 전 “북한 정권은 지구상에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정권”이라고 갈파했다.
북한을 통치하는 김정일의 건강 악화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반세기 이상 지속된 폭정이 과연 종말을 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한민국으로서는 폭정의 붕괴를 기다려 자유민주의 틀 속에서 통일하는 것이 정도(正道)일 것이다.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은 북한 독재를 새삼 인정하고 도와줘, 북한 주민의 고통을 연장하고, 자유통일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 이 나라가 겪고 있는 국정 파탄과 위기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추진된 ‘햇볕정책’과 그로 인한 ‘한·미동맹 와해’에서 나오는 것임은 국내외에서 내려진 객관적 평가이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이번 대북정책 수정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는 벌써 한나라당 판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12월 대선이 있는 금년 하반기는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 확실하다. 문제는 지난 10년 잃어버린 자유민주주의 이념적 국가정체성과 이성적인 대북·통일정책, 그리고 견고한 한·미 동맹을 복원할 수 있느냐다. 한나라당이 정통 보수 정당으로서 그 역할을 담당해 줄 것을 촉구한다. 한나라당이 이 역할을 게을리 할 때, 이번 대선 결과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될지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나라당의 자유 우파 정체성 상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