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폭 영화처럼 펼쳐지는 도박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의 주권을 갖고 있는 국민들은(헌법 제1조 2항 -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좋은 구경을 하고 있다.
배일도 의원은 28일 1천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들보다 재미는 없을지 몰라도, 아니 재미는커녕 짜증이 나고 분통만 터질지 몰라도, 이 나라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으니 좋은 구경이라 할 만하지 않겠나. (물론 주권자인 국민은 결코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다. 여기서 구경은, 언론 등을 통해 이 글의 제목과 같은 ‘도박과 지도자들의 꼼수’를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도박 게임 〈바다 이야기〉가 그 서막을 열었다. 서막이 열리자, 다급해진 여당은 정책 실패라며 대통령과 정부에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한껏 높였고, 야당은 권력형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그 내막을 샅샅이 파헤쳐야 한다고 의지를 곧추 세웠다. 옳다!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하고, 비리는 속속들이 파헤쳐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도박의 장을 연 사람들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사업을 했을 뿐인데, 왜 자신들이 폭삭 망해야 하느냐며 쌍심지를 켠다. 이미 떼돈을 번 사람들이야 가증스럽게 엄살을 부리는 것이겠지만, 막차를 탄 사람들이 억울해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그들 뒤에서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가슴을 치고, 이를 갈고, 눈물을 흘리며 유혹을 이기지 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그 가운데 더러는 이 도박 공화국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한다.
보자! 이 씁쓸한 현실이 도박장을 열어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과 도박에 빠진 사람들, 그 양자 사이만의 문제인가? 아니다. 관련된 정책을 세운 행정부, 관련된 법을 세운 입법부, 관련된 법을 적용하는 사법부와 감사원이 함께 만들어 낸 대한민국의 문제로 주어져 있다.
똑똑히 보자! 대한민국에는 국가 기관이 발 벗고 나서서 육성하고 있는 대표적 도박이 다섯 가지 있다. 경마, 경륜, 경정, 로또 복권, 강원 랜드가 그것이다. 합법의 탈을 쓴 이 도박들에서 한 해에 올리는 매출액이 대략 10조 5천억 원 정도이고, 그 가운데 2조 5천억 원 정도가 정부의 세입이 된다고 한다.
국가 권력이 도박을 부추겨 주권자인 국민의 재산을 빼앗아 가는 꼴이다. 그 돈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 복지를 위한다고 하니 아래 돌 빼서 윗돌 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경이니 불법 도박이 판을 치는 것도 이상하다고만 할 수 없다. 불법 도박을 하는 업자들이 올리는 매출액은 합법의 탈을 쓴 도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성인 오락실과 성인 PC방은 물론, 인터넷 도박을 할 수 있는 가정에까지 도박의 장은 거미줄 모양으로 널려 있다. 수백만 명의 도박 중독자들이 생긴 것은 차라리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현진건의 소설 제목인 〈술 권하는 사회〉는 좀 이해가 되는데, 〈도박 권하는 사회〉는 아무래도 황당하다.
이러한 실정에서, 이른바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저절로 치밀어 오른다. 굳이 다른 곳을 들출 것도 없이 내가 몸담고 있는 국회를 보자.
지난 4월에 국회에서는 ‘게임 산업 진흥법’이란 법이 통과됐다.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바다 이야기〉 같은 도박 게임을 산업이라 규정하고, 그것을 진흥시키겠다는 법이다.
나는 이 괴이한 법에 단호히 반대했지만, 여와 야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의원들이 찬성하는 바람에 국회를 통과했다. 물론 정부의 정책 의지가 담긴 법이었다.
이 법을 발의한 어느 여당 의원은 법이 통과되자 자못 흥분해서 ‘게임 산업은 우리를 먹여 살릴 미래의 효자 산업’이라며 기쁨을 드러내더니 ‘이제 야만의 시대를 접고 문화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또한 잘 알려진 대로 어느 야당 의원은 ‘사행성 게임도 게임이며 불건전한 게임도 산업이다’라며 이 법의 통과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과연 도박 중독, 게임 중독의 심각한 실태를 몰랐단 말인가? 아니면 알고도 경제 회생 운운하며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말인가? 국민 누가 도박으로 먹고살자고 했단 말인가? 아니면 나라가 어떤 꼴인지, 국가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모르는 정부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두고 산업이라 하고, 진흥은 또 무엇을 진흥시키겠다는 것인가?
무기 수출이 돈벌이가 잘 된다고 해서 무기를 국가가 수출하여 국민을 잘살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되듯이, 국제분쟁지역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우리나라에 이득이 된다고 해서 그 쪽 편을 들어서는 안 되듯이, 국가가 도박을 가지고 국민을 잘 살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경제학자 갈브레이드 교수는 “경제는 도덕이란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라 하지 않았던가? 도덕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은 경제는 성립할 수 없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산업에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하고 문화이벤트를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문화적인 나라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접근의 동기나 목적이 문화적인데 있기보다 반문화적인 상업성이나 경제성에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연주자는 악기를 다루는 기술만 익힌 사람이 아니라 그 악기를 통해내는 소리에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 연주자가 인간과 자연과 우주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문화란 바로 이러한 것이기에 외국의 것을 흉내 내거나 도박을 포장하여 산업으로 둔갑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청전 같은 우리의 영혼이 깃든 우리 것을 발전시켜 해외에 내놓을 수 있어야할 것이다.
그런데〈바다 이야기〉로 나라가 떠들썩해지자 여당은 재빨리 바로 그 문제의 법, ‘게임 산업 진흥법’의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지 5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에서도 강력한 규제안이라며 몇 가지를 내놓았다.
그런데 그 개정안이라는 것을 보자 하니, 규제를 강화해 도박성을 막아 보겠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흥과 규제가 시류에 따라 시소를 타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꼴이다.
같은 도박인데, 경마나 카지노 같은 것은 계속 육성시키고 〈바다 이야기〉 같은 것만 퇴출시키면 된다는 말인가? 왜 어제는 진흥시키겠다더니, 오늘은 규제를 하겠다고 변덕을 부리는가? (아니, 도대체 누구에게 진흥과 규제, 육성과 퇴출의 칼을 멋대로 휘두를 권리가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꼼수와 현란한 말과 죽어버린 지식을 가지고 근본적인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원인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 이렇게 저렇게 손보는 대증 요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겠다는 것인가? 수상스러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문제 해결의 길은 따로 있다. 경마건, 카지노건, 〈바다 이야기〉이건, 도박과 같은 것은 국가 기관이 나서서 할 일이 아니다. 공연히 나서서 진흥이니 규제니, 육성이니 퇴출이니 해봐야 주권자인 국민에게는 실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인 오락실에서 벌어진 작금의 추한 현실을 보라. 문화관광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나서서 진흥과 규제의 칼을 멋대로 휘두른 결과가 어떤가? 온갖 불법, 탈법, 편법이 판을 치지 않았나? 수많은 서민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았나?
문제가 된 경품용 상품권 시장은 조폭들이 쥐락펴락하지 않았나? 위기에 처한 오락실 업주들은 뇌물을 준 공무원들과 함께 자폭하겠다는 협박까지 하지 않았나? 이것이 국가 기관이 나서서 생긴 숨길 수 없는 실상이다.
국가 기관은 손을 떼고 그와 같은 일들은 민간에게 맡겨야 한다. 민간에게 맡기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도박이 문제가 되면 형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굳이 이런 법 저런 법을 누더기처럼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러면 형법의 테두리 안에서 민간은 자생의 길을 찾게 된다.
민간에,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는 것이, 그래서 자율성을 갖고 스스로 창조와 생존의 길을 개척하게 하는 것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최선의 길이다.
국가 기관은 국방이나 외교, 혹은 사회적인 약자의 보호 같은 일, 즉 각 개인 차원에서 감당하기 힘든 문제에 충실하면 된다. 자유를 억압해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는 일은 결단코 그만두어야 한다.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요행을 바란다. 사이비 지도자들의 꼼수 역시 요행을 바라기는 마찬가지이다. 요행은 말 그대로 뜻밖에 얻는 행운일 뿐이다. 그런 것에 기대어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기다릴 것인가?
도박 (賭내기 도, 博도박 박): ①화투 카드놀이 시합 등과 같이 그 승부(勝負)가 불확실(不確實)한 일에 요행(僥倖)을 바라고 돈을 거는 일 노름 ②요행수를 바라고 불가능(不可能)하거나 위험(危險)한 일에 손을 대는 일
도박(賭博)과 지도자들의 꼼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