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우선 서울대 교수부터 사퇴하라고 권해라
지극히 평범한 글에 무릎을 친 일이 있다. 산행대장에 관한 글인데, 강한 체력과 경험을 앞세워 가쁜 숨 한번 내쉬지 않고 단번에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사람은 산을 잘 타는 등산가일 뿐 훌륭한 산행대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뉴스파인더)오윤환 논설위원 좋은 산행대장은 늘 반걸음 정도 앞서가며 뒤에 오는 대원들을 보살피며 손을 잡아주고, 등산 내내 대원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대원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는 표현이 가슴에 “쏙” 와 닿는다. 올 대통령선거에서 누구를 뽑아야할지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산행대장 같은 후보가 누구인가?
이른바 중도 신당 국민생각(가칭)의 창당을 추진 중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지난 13일 평화방송에 출연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향해 진한 애정을 표시했다. 그는“안 교수는 구태정치에 빠진 한나라당, 민주당과는 같이 할 분이 아니다.
국민생각 외에는 대안이 없을 것”이라며 안 교수가 정치를 한다면 우리와 함께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다. 박 이사장이 말한 “우리와 함께”라는 뜻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안 교수를 ‘국민생각’의 대선후보’로 영입하고 싶다는 속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버티고 있는 한나라당과 달리 마땅한 대선후보가 없는 그의 입장에서는 안철수와, 안철수가 만든 ‘V3 백신’으로 한나라당의 집권을 차단하고 정권을 노려보겠다는 요량으로 보인다.
박 이사장의 안 교수에 대한 평가는 일단 나무랄 데가 없다. 박 이사장은 “(안 교수가) 국정과제 하나하나에 깊은 경륜과 소신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일단 냉정하게 접근했다. 그러나 “하지만 그의 삶을 보거나 얘기하는 것을 보면 합리성과 상식에 기초하고 미래 지향성이 있는 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렇다. 안 교수가 국정과제에 경륜이나 소신이 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안 교수가 박원순 변호사를 ‘서울대통령‘으로 만드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고, 서울시장선거 과정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으로 온 세상이 시끄러웠지만 FTA에 입을 열었다는 뉴스를 접한 사실이 없다. ‘소신’을 내보인 적이 없으니 ‘경륜’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조건 무상급식 반대'에 대한 안 교수의 생각이 무엇인지조차 국민들은 모른다. 느닷없이 박원순 변호사를 밀어 당선시켰으니 무상급식을 절대 찬성하려니 하고 여길 수밖에 없다.
서울시장 선거가 끝난 뒤 한참 지나 들려온 것은 그가 김근식 경남대 교수로부터 남북관계에 관해 자문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마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급사하는 바람에 김정은 3대 세습체제가 얼마나 버틸 것인가 등에 관해 의견을 구했다는 것이다. 드러난 것만 김근식 교수일 뿐 더 많은 학자, 전문가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올 대선은 이제 11개월 남짓이다. 그렇다면 안 교수의 대권수업은 중고등학생들의 ‘쪽지시험’과 다를 게 없다. 한때 그의 멘토였던 김종인 전청와대 경제수석에 따르면 안 교수는 국회가 뭐하는 곳인지, 국회의원 역할이 뭔지에 대한 기본 지식조차 부족한 사람이다.
국회에서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는 게 김 전 수석 증언이다. 이런 안 교수가 ‘쪽지시험’으로 남북관계를 포함해 국정과제를 공부한다니, 박세일 이사장이 “안 교수가 국정과제 하나하나에 깊은 경륜과 소신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한 것은 틀림없다. 다만 “비교적 합리성과 상식에 기초하고 미래 지향성이 있는 분”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옳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 쌔고 쌨다.
그렇다면 박 이사장에게 문제가 발견된다. “비교적 합리성과 상식에 기초하고 미래 지향성이 있는 분”이지만 “국정과제 하나하나에 깊은 경륜과 소신이 부족한” 안 교수를 대권후보로 애타게 기다린다는 것은 적어도 ‘한반도선진화’를 추구하는 학자로서 취할 입장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중국과 미국의 지도자가 거의 동시에 교체되고, 한반도가 미중의 이해각축으로 운명적인 국면을 맞는 상황에서, 한반도선진화’를 꾀한다는 박 이사장이 국정과제에 경륜과 소신이 없는’ 안 교수를 대권후보로 영입하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삭막한가? 박 이사장이 가까운 장래에 안 교수를 만나는 기회를 가질 생각”이라니 지켜 볼 수 밖에 없다. 안 교수의 '쪽지시험'같은 대권수업이라니 할 말이 없다. 평생 남북관계에 매달려도 김정일에게 속고만 살아온 우리 아닌가?
김종인 전 수석은 “국민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안 교수가 이 상태로 대통령 되면 나라가 엉망이 될 수 있다. 안 원장이 나에게 ‘국회의원과 국회가 무슨 일을 하냐’고 되묻더라. 정치는 소모적이고,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 아니냐고 하더라. 의회 기능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생각을 하냐. 안 교수는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안철수 멘토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선거가 임박해서 신선함을 무기로 혜성처럼 등장한 후보는 일종의 '충동구매'”라며 “국가 최고 지도자를 뽑는 선거인데 충동적으로 투표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다.
이제까지 공개된 안 교수의 새로운 멘토는 민주통합당 김효석 의원과 경남대 김근식 교수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김 의원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고 “(북한의 북침이 아니라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여러 곳에서 양심선언이 있을 수 있고, 밝혀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주장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양심선언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있지도 않은 ‘양심선언’을 안 교수에게 전염시키는 것이나 아닌지 모를 일이다.
또 김근식 교수는 대북 햇볕론자 다. 김 교수는 천안함, 연평도 문제는 범인이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 종결이 이뤄진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 문제도 매듭지어야 한다”고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인물이다. 문제는 안 교수가 김 교수의 주장에 동의했다고 김 교수가 자랑스럽게 소개한 사실이다.
등산대장’얘기를 다시 해보자. 안 교수는 서울대로 부인과 함께 패키지로 직장을 옮긴 뒤 불과 두 달여만에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모색했다. 그러다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하고 대학으로 돌아가는 듯하더니 선거 직전 박 후보 사무실에 나타나 지지편지’를 공개했다. 선거가 끝나고 역시 학교에 매달리나 했더니 안철수 연구소 주식 사회기부를 들고 다시 등장했다. 그후 조용하더니 다시 마이크로소프트 빌게이츠 회장 등을 만나러 미국으로 떠났다. 불쑥’ 서울시장에 도전한다더니, ‘불쑥‘ 포기하고, ’불쑥‘ 주식기부로 등장하다, 이번에는 '불쑥’ 빌 게이츠다. 그 주기가 얼추 1개월이다. ‘등산대장은 등반도중 대원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다“는 글이 떠오른 이유다.
박세일 이사장이 혹 안 교수를 만나 국민생각’ 영입의사를 밝힐 기회가 있다면 이 말도 전했으면 좋겠다. “안 교수. 정치할 생각인 것 같은데 차라리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는 게 도리 아니겠소?라고 말이다. 박 이사장이 국민생각을 만들면서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했듯이. 노무현의 ‘수도 천도’에 끌려가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맞서 분연히 전국구 의원직을 내던진 박세일, 수도이전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석연 변호사, 두 사람은 노무현이 “대선에서 재미 좀 보려고” 내걸었던 수도이전을 저지한 영웅이다. 그래서 박 이사장의 안 교수를 향한 추파가 더 언짢다.
| 
안철수를 향한 박세일의 손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