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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전란사
기사등록 일시 : 2004-09-24 13:12:44   프린터



고려의 대몽항쟁

신라와 발해의 뒤를 이어 한반도에 진정한 통일시대를 연 고려왕조는 민족역사상 가장 많은 외침을 당했다. 중기엔 거란과 여진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여 국가의 위길 잘 극복하였다. 그러나 세계 제국 몽고의 침략으로 격심한 피해와 내부적으로 큰 전환기를 맞게 된다.

몽고의 침략과 배경

몽고제국

고려는 몽고와 더불어 강동성의 거란족을 평정한 것이 계기가 되어 무력을 앞세운 그들의 외교관계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후 몽고는 자주 사신을 보내 막대한 공물을 강요했다. 그러던중 몽고의 사신 저고여의 암살사건으로 말미암아 고려는 몽고의 침략을 모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암살사건은 출병의 구실이었고 실제로 고려에 대한 몽고의 출병은 몽고가 아시아 제압의 일환으로 미리 계획해둔 군사행동의 실천에 불과하였다. 본격적인 중국과 동남아시아 경략을 위해 후방을 단단히 하겠다는 몽고의 계산이 깔려있던 것이다. 이것은 몽고의 군사적 활동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아시아의 정국이 고려에 강요한 하나의 운명적 비극이었다.

몽고는 1231년부터 침입하기 시작하여 고종 46년(1259) 강화 때까지 전후 6차례에 걸쳐 침입하였다. 전투는 처음 북계지역에서 시작하여 내륙의 여러 곳에서 전개되었고, 말기에는 압해도(전남 신안), 설악산, 금강산 등 연안의 섬이나 험준한 산골짝으로 확산되었다.

1차 침입에 직면한 최우정권은 개경을 지키면서 항전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강화도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주거시설과 방어시설을 갖춘 강화도는, 원종 11년(1270) 무인정권이 붕괴될 땍까지 40년 동안 고려의 전시(戰時)수도가 되었으며, 몽고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했던 거의 유일한 지역이었다.

강화산성

당시의 최씨정권은 몽고의 침입에 대응하여, 일차적으로 강화를 지키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각 지방에는 방호별감을 파견하여 침입 예상지역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였다. 민인으로 하여금 산성이나 섬으로 들어가 몽고군의 공격에 맞서게 하였다. 이러한 전술은 산성이나 섬에서의 생활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되었다.

대규모의 부대동원에 의한 전면전은 회피하였고, 필요에 따른 소규모 유격전을 전개하는 데 불과하였으며, 몽고군의 철수를 외교적 노력으로 달성하고자 하였다. 최씨정권의 이러한 소극적인 대책으로 인해, 전투의 대부분은 관군의 지원없이 백성들 자력으로 수행되었다. 몽고의 기병(騎兵)을 훈련이 덜 된 일반 백성들이 물리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다. 백성이 입은 피해는 엄청났다. 그렇지만, 전국의 곳곳에서 몽고군의 침략을 맞아 물리친 전투가 수없이 전개되었다.

백성들이 주도한 항쟁
몽고의 1차 침입이 있었을 때 평안북도의 구주성(龜州城)에서 격전이 있었다. 주위의 백성들이 모두 성안으로 집결하였으며, 몽고군은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였다. 성을 파괴하기 위한 여러 시도나 성안을 혼란시키기 위한 몽고의 기도를, 박서(朴犀)가 지위하는 귀주성의 백성들이 잘 대응하면서 막아냈다. 몽고 장수는 고려의 이러한 항전능력에 탄복하였던 것이다. 고려인의 이러한 전투능력이 잘 조직되고 규합되었다면, 대몽항쟁은 좀더 효과적으로 수행되어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1차 침입시에 초적(草賊)들이 활약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초적은 국내 통치계급의 학정에 반대하여 궐기한 농민군인데, 몽고가 쳐들어오자 이들이 선두에서 싸울 것을 정부에 제의해 왔다. 마산(馬山 ; 평북 구주 부근)의 초적 지휘자 2명이 개경으로 최우를 찾아와 정병 5천을 거느리고 침략군을 막기 위해 전투에 참가하여 동산역(洞山驛)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그리고 광주(廣州) 관악산의 초적도 관군과 함께 대몽항전에 참여하였다.

처인부곡민(處仁部曲民)이 몽고군을 맞아 싸운 전투는(1232), 대몽항쟁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갖는다. 성내에는 다수의 민과 더불어, 근처에 있는 백현원(白峴院)의 승려 김윤후(金允候)도 있었다. 김윤후가 쏜 화살에 몽고의 장수 살례탑(撒禮塔)이 사살되었다. 장수를 잃은 몽고군은 서둘러 철수하였다. 대몽항쟁에서 승려들은 김윤후를 비롯하여 일종의 게릴라 지도자로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입암산성 전투는 고종 43년(1256) 정월 장성의 입암산성에서 벌어졌는데, 다른 지역의 전투와는 달리 관군이 주도하였다. 몽고병이 여러 섬을 공격하려고 모의한다는 말을 듣고 장군 이광(李廣)·송군비(宋君斐)를 보내어 선사(船師) 300명을 거느리고 남하하여 이를 막게 하였다. 영광에 도착한 이들은 길을 나누어 몽고군을 협공할 것을 약속하였지만 사전에 누설되어 시도하지 못하고 이광은 다시 섬으로 들어가고 송군비는 입암산성에 입보(入保)하게 되었다.

입암산성 전투 얼마 후에 차라대군과 압해도인의 전투가 벌어졌다. 차라대가 수군 70척을 거느리고 압해를 치는데, 압해 사람이 대포 2개를 큰 배에 장치하고 기다렸다. 양편 군사가 서로 버티고 싸우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대가 언덕에 임하여 바라보고 말하기를, "우리 배가 대포를 맞으면 반드시 가루가 될 것이니 당할 수 없다."하고 다시 배를 옮겨 치게 하였으나, 압해인들이 곳곳에 대포를 배치하였기 때문에 몽고인들이 드디어 수공(水攻)의 장비를 파하였다고 한다

몽고침입

이러한 혁혁한 전과를 거둔 일도 있었지만, 고려가 입은 피해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몽고군은 이르는 곳마다 닥치는 대로 살륙을 자행하였으므로, 고려의 일반민들은 막대한 희생을 당하였고, 산성이나 섬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하여 굶어 죽는 일이 허다하였다. 몽고군에게 살륙된 사람은 이루다 헤아릴 수 없었으며, 몽고군이 지나간 주현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고 할 정도의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주거지역이 크게 파괴되었고, 농지는 황폐화되었다. 그리고 국가의 소중한 문화재인 부인사 소장의 대장경과 경주 황룡사의 구층목탑이 불탔으며, 그밖에도 중요한 문화재가 다수 소실(燒失)되었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도 강화도 최씨정권은 특별한 대응책이 없었다. 그들의 대책없는 주전책에 대해 비난여론이 제기되기 시작하고, 왕정회복에 대한 요구가 점차 확산되었다 . 1258년 항전을 고집하던 최씨정권이 무너지고, 몽고와의 강화가 성립되었다. 몽고와의 강화로, 이를 주장한 국왕과 문신관료들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었다. 이후에도 무신들이 권력을 장악하고서, 몽고와 재대결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대두하여 원종을 폐위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왕실의 외교 활동과 몽고의 압력으로 실패하였고, 원종은 몽고군의 지원하에 개경환도를 단행하였다(1270).

삼별초의 항쟁

이리하여 몽고와의 전쟁은 종식되기에 이르렀지만, 이번에는 무인과 연결되어 있던 삼별초가 대몽항쟁의 기치를 들고 봉기하였다. 삼별초는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시초는 밤에 도둑을 단속하는 데 있었지만 차츰 그 임무가 확대되어 경찰임무인 포도(捕盜) 금폭(禁暴) 형옥(刑獄) 국수(鞠囚) 이외에 군사임무인 도성의 수비를 비롯해 친위대·특공대·정찰대의 구실도 하였다. 대몽항쟁에서도 삼별초는 두드러진 활약을 하였다.

1270년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를 단행하자, 장군 배중손과 야별초 지유(指諭) 노영희(盧永禧) 등이 강화에서 삼별초를 거느리고 반기를 들었으며, 승화후(承和候) 온(溫)을 협박하여 왕으로 삼았다. 삼별초는 곧바로 8월에 진도로 옮겨와 장기적인 대몽항쟁을 계획하였으며 일본과의 제후도 모색하였다.

진도는 조운로의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조운을 막으면 개경정부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진도는 일본이나 중국과 교류하는 데 요충지였으며, 또한 진도 자체가 비옥한 농지를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였다. 그리고 배후에 무인세력의 기반이 있었던 전남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삼별초군은 남해안 일대와 전라도 일대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게 되었다. 군현에서 삼별초를 맞아들여 항복하거나 혹은 진도에 가서 삼별초의 적장을 알현하기도 하였다. 삼별초가 진도에 근거를 두자, 전라 경상도의 조세 운송은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삼별초의 항쟁

진도에 근거하고 있던 삼별초군은 여몽연합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몇차례 물리쳤지만, 결국 원종 12년(1271) 5월 진도에서 쫓겨 제주도로 건너갔다. 제주도에 입거한 뒤에도 삼별초는 전라도 서남해안 일대에 세력을 뻗치고 있으면서, 조운로를 막아 원종 13년 3월에서 5월까지 조운선이 20척, 곡미(穀米)가 3,000여 석을 약탈하였다. 또 원종 13년 8월에는 삼별초가 전라도의 공미(貢米) 800석을 약탈하였다. 원종 13년 4월 제주도에 있던 삼별초는 흔도,홍다구 등 여몽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유례가 없는 몽고의 엄청난 공격에 대해 고려 정부에서는 조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강화도에 수도를 옮겨 그곳만을 지킬 뿐이었다. 내륙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지역민들이 힘을 합쳐 항전을 전개하였다. 유감없는 전쟁을 전개하였으나, 그 희생은 말로다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몽고와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삼별초가 이에 불복하여 대몽항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삼별초의 항전도 여몽연합군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이제 고려는 몽고의 간섭을 받고 경제적 수탈을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대몽항쟁의 의의와 결과
고려는 분명히 세계 최강의 군대를 맞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끈질긴 전투를 치뤘냈다. 비록 내정간섭과 경제적인 수탈은 격심했지만 장기간에 걸쳐 백성들이 펼친 수 많은 항쟁은 몽고군도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몽고는 직접지배가 아닌 강화를 통한 협력국으로 고려를 관리하게 된다. 무신정권의 무능과 자신들의 세력유지를 위한 행태들은 반성하고 평가되어야 할 과제이지만, 백성들의 항쟁은 나라 자체가 쓰러지는 최악의 상황을 거부할 수 있었던 강력한 힘이 되었다.

자료제공: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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