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현일 기자의 시사펀치
일본의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지난 20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이사간담회에 참석해 발표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한간 조율의 경위’라는 보고서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아베 정권이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그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던 ‘고노 담화문’을 사실상 뒤집은 것이다. 1993년 8월 고노 담화문에는 1991년부터 진행해 온 일본 정부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베 신조 정부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고노 담화문 작성 과정에서 한일 정부간 문안 조율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며, 둘째 양국 정부가 문안 조율사실을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당시 일본 정부가 수개월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면담 및 자료조사를 통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것을 부정하는 치졸한 짓이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해 '관여' 수준에 머문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전체적인 범죄의 규모 및 피해 상황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부실한 것이었다. 또한 내용상의 부실은 물론 담화에서 인정하고 약속한 사항마저 이행을 책임지지 않은 무책임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아베 정권이 이런 사단을 벌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가장 큰 수치인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한일 정부간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격하시킴으로써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패전으로 형성된 동북아 질서를 부인하고 군사강국으로 재무장하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에서 고노 담화 검증 결과 발표에 대해 "역사를 뒤집으려는 기도”라고 맹비난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아베 정권은 고노 담화 검증을 명분으로 실무라인을 포함해 외교 채널간 의견 교환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외교적 무례를 범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우리 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유보했다. 국제사회와 함께 적절한 대응을 하겠다. 아베 정권이 고노 담화의 내용을 폄하하면서도 담화 자체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 교묘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이런 애매한 입장 표명은 자칫 검증 결과를 놓고 한.일간 진실 공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일본 정부가 검증해야 할 것은 고노 담화의 작성 경위가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철저한 검증임을 우리 정부는 분명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최근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이라고 발표했다. 정부 발표가 국민들 앞에 내보이기 위한 체면치레용 ‘립서비스’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극우 행보를 비판하려면 우선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 친일잔재의 청산이다. “위안부 배상 문제는 이미 40년 전에 끝났으며 이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 당당한 외교”라고 뇌까린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한 지명부터 당장 철회해야 한다. 일본 극우파가 환영하고 중국과의 외교 마찰이 우려되며 국제 사회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한 자가 자진사퇴를 거부하고 총리 후보랍시고 설치고 다니는 꼴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면 될 일을 왜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가. 대통령이 책임지고 하루빨리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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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발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