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현일 기자의 시사펀치
대감, 그 말씀은 반역이외다. 주상전하께 어찌 그런 망발을 한단 말이오.”“어찌 반역이라 하오. 제 말씀은 나라를 위하고...”“여봐라, 대감을 속히 의금부로 압송하라...
주상께 망발’은 사극에 나오는 간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말이다. 직언을 아끼지 않는 충신은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다가 간신에게 말꼬투리를 잡힌다. 하필이면 ‘주상’을 언급해서 자신이 말하려 했던 내용은 사라지고 ‘역적’으로 몰린다. 충신의 곁에 있던 당여들도 입을 다문다. 자칫 자신도 ‘역적’으로 몰릴 수 있으니 말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 간신들은 좋다하고 충신을 옥에 가두고 주리를 틀고 입을 틀어막고 심지어는 죽인다. 지겹게도 많이 등장하는 이 장면, 사실 우리는 사극이 아니라 현실에서 매일같이 보는 장면이다.
새누리당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김광진 의원이 특위위원 사퇴를 하지 않으면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를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유는 김 의원이 2일 세월호 국조특위 질문 과정에서 했던 ‘VIP발언’ 때문이다.
김 의원은 “당시 청와대에서 지속적으로 영상을 보내라고 요구한다. TV화면 안되냐고 하니까 다른 화면을 요구한다”면서 “‘VIP가 요구하니 그것부터 하라. VIP가 그런 것을 좋아하고 중요하니까’라고 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VIP가 그런 것을 좋아하고’라는 대목이다. 이 말을 들은 조원진 새누리당 국조특위 간사가 “VIP가 영상을 좋아한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할 수 있냐”며 “사과를 하기 전에 진행을 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김 의원은 “VIP가 좋아한다는 말은 없었다. 그것은 사과한다”면서 “그러나 녹취록에는 VIP가 등장한다”고 사과와 해명을 했다.
‘VIP가 좋아한다.’ 도대체 어떤 과정에서 나온 말일까. 해경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당일인 4월 16일 오전 청와대는 약 한 시간동안 7번이나 해경상황실과 통화를 하면서 ‘VIP 보고용’ 영상을 독촉한다. 녹취를 들어보면 청와대 직원들은 정말 다급해 보인다. 해경 관계자들에게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VIP보고 때문에 그런데” “VIP도 그건데”다. 대통령이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VIP에 영상을 보고해야 하는 상황은 맞아 보인다.
여하튼 새누리당은 이 발언을 며칠째 물고 늘어졌다. 과연 이 발언을 문제 삼은 조원진 의원은 그럴 자격이나 있을까. 새누리당이 김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아 국정조사가 파행으로 흐르던 2일, 조 의원은 회의 지연에 불만을 터트리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에게 “당신 뭡니까” “유가족이면 가만히 있어라”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발언이 문제가 돼 사퇴해야 한다면, 조 의원의 발언이 김 의원의 그것보다 훨씬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이었다.
조 의원은 ‘유가족 얼굴을 몰라서 그랬다’고 해명했는데, 이를 놓고 유가족 대책위 대변인은 “우리를 바보취급 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오는 30일 특위자리에서 졸다가 카메라에 포착된 이완영 의원은 유가족에게 언성을 높이며 “내가 당신(유가족)에게 말했느냐, 조용히 좀 하라” “경비는 뭐하나” 등의 발언으로 국민들의 비난을 산 바 있다. 이 의원은 “졸 수도 있지 않느냐”며 적반하장으로 해명해 분노를 키우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김 의원은 발언이 정확치 않았다고 사과까지 했다. 그럼에도 김 의원을 물고 늘어지며 세월호 국조를 중단하려는 새누리당의 고집을 ‘정상’이라고 보긴 어렵다. 청와대 비서실 기관보고를 앞두고 생때로 버티는 게 아니냐는 힐난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VIP를 하늘처럼 모시려는 여당의 ‘엇나간 충정’은 사극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국회를 굳이 사극 촬영지로 만들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대하드라마는 연기자의 몫이다. 온갖 황당한 유머로 개그맨들의 설자리를 잃게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이제 연기자들의 자리까지 빼앗으려 들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 충정 이제 알겠으니, 사극 그만 찍으시고 국민이 바라는 ‘진상규명’에 몰입해주시는 게 국회의원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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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대하사극 셋트장 "가미 주상전하께 그런 망발"을 하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