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디지털뉴스 이정근 기자 =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전국 교수노동조합, 서울대학교 민주화교수협의회가 공동주최 18일 “벼랑 끝의 대학: 대학 자율성을 위한 싸움”이라는 주제의 긴급 토론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한국 대학이 본연의 모습을 잃고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대학은 지금 안팎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위기가 가져올 심각한 폐해에 대해 여론의 관심은 아직 부족하며 사회적 공론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 대학의 위기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민주정권 10년’ 동안에도 시장주의적 정책으로 인해 심화되고 있었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긴급한 대처가 필요할만큼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1 각 대학의 총장 직선제를 없애거나 총장 선임과정의 민주성과 정당성을 파괴함으로써 대학의 자율성을 짓밟는 정권과 교육부의 행태, 2)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사학재단의 전횡과 비리의 부활, 그리고 이에 대한 교육당국의 방관, 3) 학령인구 감소를 명분으로 마구잡이식 대학구조조정을 시행함으로써 기초학문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한국 대학의 공공성과 참된 경쟁력을 파괴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고등교육 정책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이 긴급 토론회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대학의 자율성과 공공성, 한국 대학의 본연의 모습과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세력들의 전국민적 연대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
2. 대학의 자율성을 정면으로 파괴하는 현 정권과 교육부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교육부는 민주화의 성과로 탄생한 ‘총장 직선제’를 한국 대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보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즉 교수들의 표를 얻어 당선된 총장은 교수들의 눈치를 살펴야하기 때문에 개혁이나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기득권에 안주한다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논리에 근거하여 지난 정권부터 정부의 압력에 의해 국공립대학의 총장 직선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더 나아가 교육부는 작년부터 경북대, 한국방송통신대, 공주대 등에 대해 학교가 추천한 총장에 대해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임용 제청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거부가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해당 대학에 총장 후보 재추천을 요구하기도 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국립대 총장의 임용 제청 거부 사유가 공개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과거에 몇몇 국공립대학의 총장후보에 대해 교육부가 임용 제청을 거부하면서 겸직 금지 위반이나 논문 표절 등의 사유를 명확히 밝혔던 것이다.
현 정권과 교육부의 국공립대 총장 임용 제청 거부 사태는 대학을 권력의 시녀로 만드는 동시에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낙하산 인사’를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필요한 자체 개혁을 할 수도 없으며, 기초학문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 가운데 첨단연구를 통해 시대를 선도하는 업적을 낼 수도 없다. 한 마디로, 정권과 교육부가 강조하는 경쟁력 강화마저도 빈말이 되고 있다.
전통의 사학인 동국대학교에서 최근 조계종단이 총장 선거에 깊숙이 개입함으로써 대학 자치를 침해하고 논문 표절의 혐의가 있는 자격 미달의 총장 후보에 대한 임명을 강행한 것 역시 대학의 대학다운 모습을 파괴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짓밟으려는 수구 세력이 얼마나 맹위를 떨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보도자료에서 일일이 언급할 수 없지만, 전국 각 대학에서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유사한 사태가 빈발하고 있다.
3.거꾸로 가는 시간: 악화되는 사학재단의 전횡과 비리, 교육부의 방관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사학, 즉 사립중고등학교나 사립대학의 사실사의 ‘소유주’나 이사진은 족벌경영, 회계부정, 인사비리라는 이른바 ‘사학비리 3종 세트’를 저질러왔다. 족벌경영이라는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교육기관 운영은 회계부정과 인사비리를 은폐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였다. 한국의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사학비리는 언제나 큰 논란거리였으며,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사학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강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 정부 하에서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으며, 사학의 전횡과 비리는 더욱 악화되거나 진화하고 있다.
가장 극적인 사례의 하나는 십수년에 걸친 학내 민주화 운동 끝에 알차고 민주적인 대학을 건설하는 길로 들어선 상지대학교에 사학법의 독소조항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의 도움을 얻어 김문기의 썩은 구 재단세력이 복귀한 사실이다. 교육부의 경우, 상지대에 김문기 총장의 해임을 요구했지만 상지대 이사회가 미온적으로 대응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의 총장 해임 요구가 사회여론을 의식한 그저 말뿐인 조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오랜 기간 사학비리의 온상이었던 수원대의 경우, 학생들로부터 받은 대학등록금을 절반 가까이 쓰지 않고 적립하여 3천억이 넘는 돈을 쌓아두면서, 강의실에 비가 새고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것을 방치해왔다.
오죽하면 법원이 수원대 학생들이 학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학교가 원고 학생들에게 1인당 30만-90만원씩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을까. 더구나 수원대의 비리는 지난해 2월 실시된 교육부의 수원대 종합감사에서 예산 편성 및 집행 부적정, 업무추진비 부당 집행 등 총 33건의 지적사항에 다 들어있던 것이다. 도대체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교육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상지대든 수원대든 공히 교육부의 직무 유기가 심각한 상황이다.
수원대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다가 파면된 교수들이 작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법적 소송에서 이겨 당연히 복직이 되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수원대는 행정법원의 판결이나 민사소송의 결과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면서 한국 굴지의 법무법인들을 동원하는 후안무치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두산그룹의 중앙대는 한결 진화한 사학비리를 저질렀다. 최근 전 정권의 교육문화수석을 역임한 박범훈 전 총장이 구속되고 박용성 이사장이 검찰에 소환되기도 했지만, 수원대를 비롯한 기존의 사학들이 될수록 조용히 음지에서 비리를 저질렀던 데 비해, 중앙대는 적극적으로 사회적 이목을 끌면서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을 무시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개혁’의 기수로 표방했다. 그러면서도 두산그룹은 중앙대를 인수한 이후 지난 수년간 중앙대 캠퍼스의 수많은 건축사업을 두산건설이 독점하게 함으로써 큰 이익을 남겼다. 같은 기간 중앙대의 부채가 10배 가량 늘었다는 사실이 과연 재벌 기업이 인수한 대학이 어떤 곤경에 처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4. 대학의 공공성을 뒤흔드는 대학 구조조정 정책
중앙대는 개혁의 기수를 자처하면서 2월말에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을 발표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좌초하고 말았다. 교육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학 구조조정 정책 때문에 각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 너도나도 내놓는 계획들은 오히려 대학을 혼돈과 부실에 빠뜨리고 있다.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확정된 2015년 대학 구조개혁 평가지표에서 신입생 충원율과 취업률 배점을 이전의 공청회 안보다도 높임으로써 지방대학 죽이기, 기초학문 몰락을 재촉해온 기존의 틀을 고수하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가 1단계 평가지표(60점) 중 정량지표(42점)를 활용하여 전국 사립대학 143개교에 대해 실시한 모의평가가 담긴 보고서 <대학 구조조정 현황과 전망> 중에서 두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5등급 중 최고인 A등급이 예상되는 13개교 중 전임교원 확보율이 법정 기준(교원 1인당 학생 수 인문사회계 25명/이공계와 예체능계 20명/의학계 8명)을 충족하는 대학이 전무할 것으로 평가된다. 교육부가 이 평가항목의 정량지표 만점을 법정 기준이 아닌 전국 대학 평균값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공시정보를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대학알리미’에 의하면 2014년도 교원 1인당 학생 수 전국 평균은 28.7명, 교원 확보율은 74.13%이며, 이는 OECD 국가 중 밑바닥이다. 이처럼 열악한 평균치에 만점을 주는 평가방식에는 학생 감소에 따른 교원 감축만 앞세우는 사고가 숨어 있고, 연구와 교육 여건 개선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교육부가 주도하는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의 질을 높이는 것과는 무관하다.
둘째, 법인지표(법인전입금 비율 및 법정부담금 부담률)는 평가항목에서 아예 빠져 있다. 학교 재정을 돕기는커녕 종종 부정한 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학재단들의 성공적인 로비가 간접적으로 입증된다. 작년 9월 1차 공청회에 등장했던 정성평가지표인 ‘학교운영의 투명한 공개와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대학의 공공성과 자율성, 고등교육의 질적 발전이라는 국가의 책무는 철저히 외면당하며, 교육부의 책임 방기가 적나라하다.
대학의 공공성이 흔들리는 가장 좋은 사례는 다름아닌 긴급 토론회가 열리는 서울대학교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12월 이명박 정부 하에서 서울대 법인화 법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이후, 서울대는 졸속으로 국립대학법인이 됐다. 법인화를 찬성하고 주도한 세력은 서울대가 법인이 됨으로써 교육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한층 자율적이 될 것이며 또한 수익사업 등을 통해 대학재정 또한 훨씬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총장 선임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학내 민주주의와 학교 운영의 투명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또한 정부의 예산 지원을 늘리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해야할 만큼 서울대의 위상은 불안정한 동시에 초라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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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토론회 “벼랑 끝의 대학 자율성을 위한 싸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