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소년원 분류심사관 김민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저마다 스트레스라는 피할 수 없는 홍수 속에 살아간다. 질풍노도의 10대들이나 구직난에 허덕이는 20대, 가장이라는 허울뿐인 멍에를 짊어지고 불혹을 넘겨버린 이 시대의 아버지들도 피상적 대인관계 속에 소통이 단절된 세태를 개탄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가? 어느 틈에 우리들 주변에 회자되는 말 중에는 유독 소통과 공감, 치유라는 단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어찌 보면 세대 간, 지역 간 불통의 벽을 허물고 싶어 하는 뭇 사람의 간절한 염원이기에 긍정의 공감을 느끼지만, 뒤 짚어 보면 세대 간 단절과 불통의 벽을 실감하고 휴대폰과 PC게임에 몰입하며 애써 무관심한 척 스스로를 가두는 세태의 방증이라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필자는 법무부 부산소년원에서 분류심사관으로 근무 중이며, 98년 초입 추웠던 그 해, 국가의 부름을 받아 현직에 몸을 담았다. 빈촌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무직이던 나에게 비행소년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하라는 소명을 내려 감사하며, 덤으로 가진 것 없는 내게 가정이라는 소중한 보물까지 안겨다줘 고마운 일이다.
하는 일은 분류심사관! 경찰과 검찰을 거쳐 법원소년부결정으로 임시로 입원한 아이들의 비행원인을 밝히고, 어찌하면 가정과 학교, 사회생활에 안착할 수 있을까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보니 자연스레 모난 녀석들의 내면에 자리한 상처를 발견하게 된다.
소년부 송치만 세 번째인 녀석을 만난 건 작년 여름 이맘때다. 녀석은 면담 내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 분노의 눈빛으로 외쳤다. “아빤 절 몰라요! 집에 돈도 없어요! 관심도 없으면서 기분 나쁘면 때리기만 해요. 사사건건 시비 걸고 일찍 오라 고함질러요!”라고 다음날 녀석에게 그토록 분노의 대상이 된 아비를 면회장에서 만났다.
거친 손마디에 이마에 굵은 주름이 패여 우락부락했지만 미동도 없이 아이가 한 말을 침묵 속에 듣기만 했다. 그냥 돌아서려나 싶던 그가 말미에 한 숨 쉬며 한마디 했다. “뭔 말을 해야 지 마음을 알죠! 형편이 이래서 제대로 못해준 건 참 미안한내요. 싸돌아다니는 걸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참!…….”
고개 숙인 채 돌아서는 그 사람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터벅터벅 심사실로 돌아와 우리네 위 세대 아버지들을 떠올려 봤다. 무뚝뚝하고 근엄한, 그래서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두려운 존재! 그 속에서 힘들어하며 몸부림쳤던 자식들이 어느 듯 아버지란 이름으로 내 눈앞에 서 있었던 게다.
그래선 안 돼지만 다음날 포악한 인간으로 매도되는 애비를 변호하려, 아니 주절주절 핑계라도 대신 대려고 생활관으로 달려가 녀석을 만났다. 그리고 상담실로 데려와 말했다.
아빠도 너 마음 알고 싶은데 네가 말을 안 한 대! 쌔(혀)가 빠지도록 일하는데 받은 게 고작 그거래! 그래서 정말 미안하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고 그 할아비한테 맞으며 배워 정말 그래야 되는 줄 알았대!” 라고
며칠 뒤 비가 내리던 날, 그 아버지는 하루를 공쳤다며 너털웃음을 지으며 허름한 옷차림으로 면회장을 왔다. 면회 내내 밥 먹었냐는 몇 마디 말 외 부자간 침묵만 흘렀다.
쉰을 바라보는 비슷한 연배라 녀석을 보낸 후 이런 저런 세상살이를 주고받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나가면 1시간 뒤에나 올 버스를 놓칠세라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려던 손을 잡고 나지막이 물었다. “20년 지나 녀석 손자 보면 그 때 그 마음 여실 겁니까? 라고 역시 문제는 소통이다. 그 아버지도 그렇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40대 아버지들 역시 오랜 연륜을 통해 소통의 의미와 중요성을 미뤄 짐작하고 있지만, 의사전달과 공동참여, 공동향유, 나누어줌을 연습해 본 경험이 그의 없다.
그래서 이 시대 아버지들이 자식사랑하다 저지르는 실수 중 가장 흔한게 불통이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픔에 공감하기 보다는 먼저 옳고 그름을 재단질하며 가르치려 하다보니 정작 녀석들은 거친 애비의 사랑법을 억압으로 오인, 내재된 분노의 감정들을 반항과 일탈로 표출하는 거다.
글 쓰는 내내 필자의 마음도 불편하다. 나 역시 면회장을 찾은 그 애비다. 허울뿐인 가장이라 아내와 자식들에게 불통과 폭군으로 오인 받아 한 때 버림받기도 한 불쌍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아버지들께 제안합니다.
집에 가면 물 쓰레기 좀 비웁시다!
지친 아내가 잠이 들었으면 그릇이라도 씻읍시다!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자식들 방에 들어가 얼굴이라도 맞대며 안아 줍시다!
갑자기 왜 그러냐고, 미쳤냐고 반응할 지라도 배우지 못해 서툰 사랑이었다고, 표현하지 못해 벙어리 사랑을 했다라고 고백하고 가족에게 백기를 듭시다!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곁에서 공감하려고 서툰 발걸음을 내딛은 당신! 그릇 씻고 물 쓰레기를 비우는 게 아내를 위한 게 아닌 가족으로서 응당 해야 할 본분이라 자식 앞에 밝히는 당신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 중 진정한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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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아버지들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