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장이 새로 임명되는데 그의 임기 6년을 보장해 주기 위해 일단 재판관을 사퇴시킨 후 그를 지명하는 묘한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새로 재판관 5명이 추천됐는데 그렇게 되면 현 정부가 헌법재판관 8명을 교체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신문은 이를 두고 평하기를 보수에서 중도 진보로 ‘중심이동’”이라고 했다. 신문이 서슴지 않고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뜻은 짐작이 가지만 오늘 한국의 실정으로 볼 때 이건 정말 당치 않은 이야기가 아닌가.
헌법재판관은 헌법해석에만 충실하면 될 일이지 그 사람의 색깔이 왜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그야 편안한 나라에서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대법관이나 재판관으로 임명되는 사람들의 철학이나 가치관이 문제될 수는 있다. 예컨대 사형 제도의 필요성 또는 임신 중절의 허용 여부 등등의 문제를 가지고 진보적 색채를 지닌 사람 또는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구별되듯 법의 해석이나 집행에 있어 그런 정도의 사소한 차이를 용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로 볼 때 우리는 법을 두고 그런 한가한 예기를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그 헌법의 기본적인 이념을 지켜나갈 수 있으냐 없느냐 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으면서 어떻게 감히 색깔을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렇게 복잡한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노무현 씨도 법의 탄핵을 받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법의 원칙 보다는 노무현 정권을 사수해야 한다는 의식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대거 헌법재판소에 재판관이 되었다는 사실 뿐이다.
패거리 정치가 있듯이 법조계에도 이제 패거리들이 생겨서 노 씨가 몰락하면 다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는 법관들이 대거 탄생했다는 사실 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정권이나 그런 법관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는 못하다는 사실이나 미리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법관의 색깔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