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 2003년 10월의 한·미 각서를 대통령이 5개월간이나 몰랐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열린우리당 의원이 국가안보회의(NSC) 비밀 문건을 공개하며 지난 1월 있었던 한·미 간 합의를 비난하는 등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비밀 문건의 유출이라든지 외교정책 결정과정에서의 하자 같은 절차상의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핵심적 사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갖는 의미와 논란의 배경, 그리고 한국이 향후 취해 나가야 할 외교노선 등이 아닐까 한다.
전략적 유연성 이란 주한미군을 미국의 안보·군사 전략에 따라 한반도 안팎으로 ‘유연하게’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한마디로, 동북아 정세를 보는 한미 양국의 시각 차, 한미 동맹과 방위조약, 이에 따른 한국의 외교 선택 등 기본적인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불거지게 된 가장 큰 배경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이 가시화되고 북한문제를 놓고 한·미 양국이 견해차를 보이면서 부터이다. 곧 대만이 중국의 무력 통일기도에 직면할 경우, 주한미군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미국의 정책방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물론 미국은 한·미 동맹을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지역동맹으로 발전시키기를 희망했다. 한·미 양국이 동아시아에 있어서 공동으로 북한 위협에도 대처하고, 중국의 팽창과 같은 지역안보 문제에도 공동으로 대처하기를 희망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같이 하지 않겠다면, 미군 단독으로라도 이에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이는 하등의 문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6·25 남침에 맞서 미국이 주도하는 UN군의 참전을 통해 국체를 수호하고, 한·미 동맹을 토대로 국운을 융성시켜왔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지역 안보에 있어 미국과 공동보조를 맞추어왔고, 이것이 전통적인 한국의 외교노선이었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1965년의 월남 파병은 이러한 외교노선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이 이 외교노선을 견지했더라면,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대만 위협에 미국과 공동으로 대처했을 것이다. 동시에 주한미군은 확고히 대북 방위에 전념하게 되었을 것이다. 곧 한·미 동맹이 확고한 시절이라면 ‘전략적 유연성’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미 동맹은 지역동맹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한국 외교가 친중·친북 성향을 보이며, 전통적인 ‘한·미 동맹’중심 노선에서 일탈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주’라는 이름 하에 한국사회와 특히 집권층에 반미 성향이 확대되면서, 북한과 중국에 대처하는 외교·안보상의 접근방법에 한미 간 큰 이견이 발생하자, 미국은 한국과 함께 가는 것’을 포기함은 물론, 주한미군이라도 독자적으로 운용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노무현 정권이 지난 3년간 내세워 온 협력적 자주국방’동북아 균형자론’다자안보론’ 등은 한마디로 전통적인 한·미 동맹에서 이탈, 한국외교의 ‘중립화’ 내지 ‘중간지대’를 향한 움직임이었다. 특히 장차 예상되는 미·중 간의 대립 상황과 북핵 문제 등의 대북정책 운용에 있어, 노정부는 미·중간 또는 미·북간 중재’를 통한 일종의 ‘중립’ 노선을 견지해 왔다. 이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노정되었고, 지정학적 특수성을 가진 한국에 있어 이와 같은 외교·안보 정책상의 오류는 여타 분야에 말할 수 없는 부정적 파급효과를 초래했다.
최근 한·미 양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양국간 합의에 도달하였다. 아마 이는 한국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기본적으로 미국 내의 문제이며, 미국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반대한다 해서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한미 합의에 불만을 가진 집권당의 일부 좌경 급진파 의원들이 전략적 유연성’수용이 ‘한국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등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이는 동북아 국제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에서 나온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을 반대한다면, 이를 관철하려는 미국과의 동맹 파기를 각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국가안보상의 파국을 원치 않는다면, 그러한 급진적 방향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한국의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외교 노선으로 돌아가 한·미 동맹을 지역동맹으로 발전시켜 한미 공조 하에 對中외교와 對北외교를 풀어 나가는 것이 국가이익에 가장 합당한 일이 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논란
